추석에 큰댁에 갔는데, 원래 아버지 삼형제만 모이는 터라 많지 않은 수에, 동생은 군대가고 사촌동생은 입시공부로, 사촌오빠는 출장으로, 어머니는 출근으로 빠지다 보니 참 썰렁한 모임이 되었다. 아침식사후 어른들은 동양화감상에, 나는 혼자 앉아 TV채널을 돌리다가, 졸리고 지루해서 큰아버지가 쓰시던 서재에 들어 가 보았다. 컴퓨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출장간 사촌오빠의 암호를 맞출 재간이 없었고, 책장을 둘러보다 김정현의 '아버지' 가 있어서 뽑아 읽어보았다.
이삼십대 중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독서에 정말 심각하게 관심이 없거나, 의식적으로 완고하게 피한 사람이다. 아니면 외국에 살았거나, 책을 읽기가 힘든 장애가 있거나. 1996년 초판 발행. 표지만 4번을 바꾸었고 양장본도 나왔으며 심지어 어린이용 만화로도 출간되었다. 나 역시 중학생때 쯤 이 책을 읽었고, 숙제로 독서감상문까지 썼었다. 그 때도 짜증이 났었는데, 너무 심심해서, 그리고 읽은지 십년이 넘었으니 한 번 보면 좀 새롭지 않으려나 읽어보았다.
암 말기의 아버지, 가정에서 소외된 월급쟁이 가장에 대한 신파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고는 좀 놀랐다. 이런 책을 어떻게 청소년 추천도서에 넣었는지 신기했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부모는 섹스리스커플, 중년의 권태기, 갑작스런 암선고, 서로 대화하지 않는 식구, 혼외성관계를 통한 위안, 아무도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식구들의 어설픈 화해, 그리고, 적극적 안락사라고 보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는 본인의 촉탁에 의한 살인.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가장이 식구들에게 외면받는 경우는 흔하다. 가장 바쁘기 때문이다. 가장 공유할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이를 배려 해 주고 더구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가장에게서 대화의 부재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의 의무에는 생계유지 뿐 아니라 대화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주부도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하루종일 가사에 지치고 외롭다. 아이들도 요즘엔 성인들의 노동시간보다 더 오래 공부하고, 자라면 자랄수록 부모에 의지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만 간다. 가장이 가장 많은 재화를 창출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계에 일방의 책임이란 없다.
정수씨네는 더 특별한 경우였다. 부모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첫째와 어머니와의 관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부모는 정신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전혀 교감하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예민하고 영민한 생물들이다. 그 속에서 첫째는 성인(무려 명문대생)임에도 어머니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첫째가 보기엔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화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쓸쓸해 보이고, 아버지는 차갑고, 어머니와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외면당하는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거 오히려 아버지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벽을 높일 뿐 아무런 문제도 해결 해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불쌍하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가족에서 살아온, 자라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기 어렵다는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집단적 발달장애인거지. 그걸 극복하고 연습하고 또 실패하고 그런게 가족이지 죄책감으로 덮어버린 관계가 가족은 아니다. 게다가 20년 넘게 쌓여온 감정이, 가족여행따위로 해결이 될 리가 없다. 혼외성관계야 내가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문제니까. 하지만 그게 해답이라면 그남자 참 안됐다고는 생각한다. 애정 없는 아내에게서 이혼하고 더 좋은 상대를 찾아 떠나지 못했던 그 무거운 가족이라는 관계와 짐에 대해서 위로한다. 그리고 식구들의 죄책감인지 책임감인지 알 수 없는 응원을 받으며 입원한 정수씨는 말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친구에게 죽음을 청탁한다는 내용.
그런데 왜 팔렸을까. 왜 청소년 권장 도서가 되었을까. 어차피 소비는 만들어진다. 이 책은 팔려야만 했다. 힘든 아버지상을 보여줘야만 했다. 무책임한 책임 전가를 위해서. 90년대 말, 사회는 더이상 가장을, 아버지들을 책임져 주지 못했고, 그 사람들 불쌍하니까 집에서 좀 잘 돌봐주라고 내버린 것 뿐이다. 거기에 극적인 상황을 첨가하니 이건 숫제 협박이다.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희생하는 아버지, 지금 당장 아버지를 따스하게 안아드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에요.'
사회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혹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을 개인 또는 가족이라는 집단에 부과하는 것은 치사하다. 왜냐하면 그 경우 그 사람의 인생은 전적으로 운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집안에서 태어 날 것인가 하는. 국가는 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충성을 요구했다. 9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권력은 자본에게 넘어갔고, 자본은 충성 뿐 아니라 구매까지 요구한다.
90년대는 건강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외면하고 '아버지 신드롬'을 팔았다. 십몇년이 흘러도 달라진 건 없다. 심지어 피곤한 노동자에게 기업은 휴식과 보상이 아니라 아이를 앞세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들려준다. 자매품으로 요즘 잘 팔리는 상품은 '주입식 교육에 지친 우리 아이'를 내세운 학습법이 있다. 그 제품은 아이들이 자라면 '아이의 대학은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을 표방하는 '입시교육'으로 보상판매를 해 주기도 한다.
내가 좀 심한가? 그러면 뭐... 그렇다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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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으로 완고하게 피하는 데 성공! 이거도 피하고, 국화꽃 향기도 피했는데 안도현의 연어를 못 피했다. ㅜㅜ
그나저나 저런 내용이 잘 팔렸다는 건 그렇다 치자, 저 내용으로 청소년 권장도서에 어린이 만화까지 나왔다고? 와... 세상에 어디서 오입질 해놓고 큰 소리 치는 거냐능 ㅋㅋ
자매품 엄마 팔아먹기는 레파토리가 크게 안 변하는 거 같아.
안도현의 연어 감상을 더하자면 연어를 통해 표현된 정자 방출의 욕구랄까. 살다살다 물고기 포르노는 처음 보았다능. 손발이 오글오글.
물고기 포르노-_-ㅋㅋㅋㅋ
뭐 좋게 보자면 좋은점도 있기야 하겠지만...
안좋게 보면 뭐든지 안좋아 보이는 면이 있는거겠지만...
뭐 도스토예프스키 이런 사람들만이 문학인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동의할 수 없다 저 판매량은-_-;;;
피하는데 성공을 축하;;;
정말 이상한 건, 저 책을 아버지가 사오셔서 내게 보라고 준 것이나, '아버지에게 선물하세요'라는 광고. 아버지는 내게 뭘 바라는 것일까, 혹은 아버지에게 선물해서 뭘 어쩌라는 걸까...
나는 아버지 보긴했는데-
보고 울었는지어땠는지는 기억이 전혀 안난다;;
사실 내용도- "아버지가 말기암에걸렸는데 친구한테 안락사를 부탁해서 죽는대-"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니글 보고 생각났어;;ㅋㅋ
뭐 저도 울진 않았는데요 ㅎㅎ 짜증이 났을 뿐-_-
15살때 쓴 독서감상문 아직 갖고있는데 찾아봤더니 지금과 감상이 별 차이가 없더군요...
제길 10년이 넘도록 생각이 달라진게 없다니-_-
난 뭘 한거지-_-
나도 안 봤;;;;;
신경숙의 <어머니>도 안 볼;;;;
좋아요 좋아 ㅋㅋ 이런 책들은 좀 안볼 필요가 있;;;; 신경숙은 엄마를 부탁해인가 그건가요? ㅎㅎ
그나저나 신혼여행은 재밌었나요? 집들이하세요 얼른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