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적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2/16 17:15
작년 3월에 입대했던 동생은 이제 두 달 남짓한 군생활을 그간 쓰지 못한 휴가들로 때우고 있다. 동생이 입대할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2년. 그래도 2년이면, 나는 아마 동생의 등록금에 보태라고 선심을 쓰거나, 그렇게 거창하진 않아도 새 옷 사입을 용돈 조금은 마련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의 시간은 언제나 괴롭다. 가능성이 낮은 줄 알았으면서도, 혹은, 이미 결과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확인하는 순간은 미묘하게 두근거린다. 그리고 역시나 실망한다. 잠깐이나마 꿈을 꾼 자신을 비웃는다. 뭘 생각했던거야 도대체. 그 일희일비의 찰나. 한때 친한 후배와 일희일비하지 말 것을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힘들어하지 말고 갈 길을 가자는 뜻이었다. 어떻게든 결국은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는 작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한때는 인간이란 일희일비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며 사는게 삶이라고, 그렇게라도 생동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다행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허황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내가 싫다.
10년전, 2000년 12월 3일 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의 나에 대한 시선은, 내 아버지의 나에 대한 시선과 같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신뢰'라는 것을 받아 보지 못할 것이다. 내 아버지가 나를 신뢰하지 않듯이.' 라고 썼다. 18세.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난 직후의 어느 날. 그리고 28세를 이주일 쯤 앞둔 나는 지금, 저 글을 떠올리며 몸서리친다. 그리고 한 줄을 추가한다. 나 역시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멈춘걸까. 무엇이 문제인걸까. 나는 뭐가 잘못된걸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럴 수나 있을까.
복리로 불어나는 적자. 이미 신용은 불량.

(...)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
이젠 내게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 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민음사, 133, 134쪽.
2009/12/16 17:15 2009/12/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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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eja 2009/12/17 08:0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내가 믿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