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조건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5/25 13:08
0. 죽음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비록 화가나고 안타깝고 바보같고 극단적이고 파괴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 하더라도, 인간으로써 삶을 선택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1.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몇가지 이유가 있다.
내일이 도저히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때 사람들은 절망한다. 지금 너무나 괴롭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라고 생각 될 때, 앞으로 더 나빠질 것이라 생각할 때.
지키고 싶은것이 있는 사람들 만이, 그리고 그것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 될 때 포기하게 된다. 흔히 nothing to lose, 라고도 생각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잃을것이 없을때는, 무언가 포기할 것 조차 없다. 더 나빠질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죽음을 선택하는것은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다. 인정하기 싫겠지만, 누군가 주변 사람이 삶을 버린다면, 우리는 대개 화를 낸다. 상처 받는 것이다.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그게, 복수인거다. 절망과 포기의 끝에서 남은 분노, 또한 자신에 의한 자신의 타살, 그렇게 자신과 타인에 대한 복수.
그의 선택 역시 그랬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 그가 최근, 조사를 받으면서 마지막으로 홈페이지에 쓴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이 곳에 더이상 이런 내용의 글을 쓰지 않겠다, 피의자로서 권리를 주장하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었던것 같다, 자신을 잊어달라, 는 그런 내용의 글이었다. 그 때 그 글을 읽고 든 생각은, 역시, 그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내가 이라크파병으로, 한미FTA로 그렇게 싸웠던 그는 역시 이런 사람 이었구나,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구나. 나이브하고,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진담 반 농담반의 말을 하던 그에게, 그런 싸움들이 소용이 없었던 이유가 이런거였구나. 아마 여기까지가 그의 한계 일테고, 또 어쩌면 그만큼 그에게는 이것 밖에 없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것들을 잃고 있구나, 하고 생각 했었다.

3. 그리고 결국 0523 새벽.

4  이런 인간을 비교한다는 것이 미안하지만, '전두환도 사는데...' 라고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전두환은, 지키고 싶은 것, 잃을 것이라곤 29만원 밖에 없고, 그 29만원은 공고히 지키고 있으니 잘 살수 밖에 없는것이다.

5. 혹자는 노무현을 헤어진 애인이라고도 말한다. 나는 무엇이었을까, 난 그에게 투표 한 번 한적 없고 곳곳에서 나는 그와, 혹은 그의 주장들과 싸우고 얻어맞고 욕하기도 했다. 애인, 이라고 할 만한 연심을 가진적이 없지만, 조금은 기대와 실망도 했고, 그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그를 조롱하는 이들처럼 경멸하진 않았다. 어쨋든 그는 내 20대 전반기의 안에 있었다.

5. 어떻게 추모해야 할 지는 모르겠다. 추모에 대한 논의들도 보고 있으면, 의미 있는 주장들도 있고, 제발 그만 좀 말했으면 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없다. 단어의 논란,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 고인에 대한 지나친 미화 등등. 또한 죽은 자에 대한 지나친 면죄부와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감상들이 답답하긴 하지만, 그런 만큼, 그것이 보편적인 망자에 대한 정서임에도, 경찰병력으로 추모를 제한하는 이들은 정말... 뭐라 표현 할 말이 없다. 그 결과와 책임은 반드시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6. 다만 지금, 조용히ㅡ 떠난 이의 명복을 빈다.

7. 그리고, 이 남은 산 자들의 시간. 그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 낼 것인지. 고민이다 그거. '다음에 나 대신 죽을 사람'을 고르는 이 무서운 한국 사회에서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다.

8.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자는 말은 절대로 하지 말자. 어떤 인간의 어떤 행동도 그것이 사회적 맥락안에서 읽어질 때, 정치성을 띈다. 어떤 사람의 행동은 누군가에게 정치적으로 무의미할 정도의 영향일 수 있겠지만 어쨋든 노무현씨의 죽음은 현재로서는 정말 큰 사회적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하고, 그의 죽음은 정치적이다. 그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는 말은 사회적 맥락 안에서, 화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표명하는 발언이 된다.

9. 종로에 갔더니,
사람들과 우리들의 시대가 묻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흘러가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고 검은 상복을 준비해 줄을 지어 서있었다.
넥타이 맨 검은 새들, 과연 앞으로 어떤 행동과 주장들이 그들의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의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그들의 날개짓을 향하게 할 것인지.
돌아오는 길에 이 노래를 들었다.
추모곡이라기 보다는. 그냥 일요일 시청 앞 풍경에 대한 나의 소회.


하... 일단 여기까지. 약먹고쓴거라 이해를........
2009/05/25 13:08 2009/05/25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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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펑크키드 2009/05/26 09:4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날은 너무나 화창한 날이었지 아마

  2. 유령수업 2009/05/29 22: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뭐랄까 정치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떠나는 건 역시 뭔가 슬프다는 생각이 드네요


    낮에 내내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저녁에 뉴스로 마지막을 지켜보는데
    가슴이 헛헛해집니다;

    • 모깃불 2009/05/30 19:45  address  modify / delete

      네.. 분향소 앞을 세번이나 지나갔는데 분향은 못했어요. 왠지 뭔가 마음이 정리되질 않아서... 그를 이해하거나 하진 못하겠지만, 위로는 하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