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넌 적이 있다. 지중해의 항해, 낭만적일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동 시간은 길었고, 데크는 추웠으며, 배는 시끄러웠고 3등칸에 해당하는 에어시트는 편히 잘 수도 없었다. 공항에서 노숙한 다음날과 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린 날의 컨디션이 비슷했다. 매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가방의 옷들을 주섬주섬 몸에 두르고 밤새 맥주캔을 쌓다가 웅크리고 잠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스에 도착해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섬에 갔다 나오느라 30시간도 넘게 배에서 보냈다. 결과적으로 3일밤을 배에서 자느라 엄청나게 피곤했고, 배 삯은 저가항공보다 비쌌고, 비가와서 즐겁게 놀지도 못한데다 이후의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스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한달이 넘는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단 하나의 장면을 말하라면 나는 배에서 본 밤의 지중해, 그 심연을 이야기하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러나 내게 바다는 시원한 바람이었고 고깃배의 불빛이 빛나는 곳이었다. 바다는 어느때고 무섭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풍경일 뿐이었다.
긴 밤이었다. 배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애 하나와, 좀 더 나이가 많은 콜롬비아 여자 하나와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다가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갔다. 해 질 무렵 항구를 출발한 배는 수평선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대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담배를 피우는 몇 사람들 뿐 갑판은 조용했다. 난간에 서서 바다를 내다 봤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엔진소리, 몇개의 등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막막했다. 가슴은 먹먹했다. 바라보는 순간 여기서 단 한발을 내밀어 저 안에 들어간다면 절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있었다. 심연이 책 속의 활자가 아닌 내 눈앞에 있었다. 어둡고 깊은 못, 따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심연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심연을 보고 있었다. 울것만 같았다. 갑판에서 떨어진 담뱃불은 물보라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대자연에 압도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거나 떨어질 듯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 뿐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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