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길게보는것
참을성
아는것
말하는 재주
성실함

요즘엔 이런것들이 절실하다



무늬산호수 건강. 추가 05:14-02:22
2005/05/05 00:58 2005/05/05 00:58

진실로 '거대한 소수'이기 위한 평가와
반성  

1년 전 총선 직후의 한 대담에서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치학)는 다음과
같은 말로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의 의미를 짚었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으로서는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을 법률화하지 못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뭐가 문제인지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민주노동당만이 …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정당입니다. 그런 걸 국회의사당 올라가서 할 수 있습니다."([정치체제, 근본적 변혁 시작됐다], <이론과 실천> 2004년 5월)


과연 '그런 걸' 민주노동당의 10명의 국회의원들은 해냈는가? 이것을 묻고 나름의 답을 찾는 게 이 글의 목적이다.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들어간 지 1년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은 3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평가도 그렇게 조급한 것만은 아니다.  

- 민주노동당의 의정활동 방향 - '거대한
소수' 전략


2004년 총선을 1년 앞둔 시점에서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당발전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원내 진출
이후를 준비하는 치열한 논의들이 벌어졌다. 이 때 여러 가지 쟁점이 있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민주노동당에게 국회의원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었다.

당내의 어떤 이들은 정치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그대로 입법 활동의 참여에서 원내 진출의 의의를 찾았다. 이들에게
민주노동당 의원의 핵심 역할은 의회에서 보수정당들과는 다른 진보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여 입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이런 견해를 가진
당원들은 또한 대중정당은 국회의원 같은 명망 있는 정치인 중심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긍정했다. 이 흐름을 꿰뚫는 문제의식은 '적응',
즉 의회 공간·현실 정치에 대한 적응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나타났다. 이들은 진보정당의 정치가 의회라는
제한된 공간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국회의원의 기본 임무가 비록 입법 활동이라 하더라도 현재의 계급 세력관계상 진보적인 목소리가
실제 관철될 가능성도 적을뿐더러 자칫하면 대한민국 국회라는 한계 많은 공간에 당의 활력과 가능성을 종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견해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의 의원은 원내보다도 원외의 사회세력·사회운동과 접촉하고 이들을 조직하는 데 앞장서는 게 더
중요하다. 의원들이 당의 중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당이 의원들을 지휘할 수 있어야 한다
는 생각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흐름에서는
전반적으로 '적응'보다는 오히려 '극복', 즉 의회 공간 안에서 그 한계와 대결하고 이를 넘어서는 것이 보다 강조되었다 할 수 있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이 중 어느 한 쪽을 정답으로 확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원내 진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잠정적인 합의가
만들어졌다. 그것의 대외적 표현이 바로 '거대한 소수' 전략이다. 적응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원내교섭단체도 구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교과서적인
원내 활동만으로 당 안팎의 요청에 부응할 수 없다는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일각에서 주장하는 캐스팅보트 역할 등을 강조할 수는 없었는데, 이런
주장이야말로 극복론자들의 눈에는 기존의 의회 룰 안에 당을 가둬놓는 짓이었기 때문이다.

color=#993366>'거대한 소수' 전략은 한 마디로 원내 '소수'정당이면서도 '거대한'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겠다는
이다. 그것은 또 달리 말하면 '거대한 다수'(보수양당)와 직접 대결하겠다는 것이며, 캐스팅보트 등의 역할에 만족하는 '왜소한
소수'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보수정당들이 무시하거나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는 쟁점들을 앞서서 제시하여 보수 대 진보의 대립선을 만드는 것이
'소수'이면서 '거대'해질 수 있는 제1의 조건이라면, 사회세력을 직접 조직하고 대중운동의 힘을 극대화하는 게 그 제2의 조건이다. 10석의
한계 속에서 적응론자나 극복론자나 모두 이러한 지향에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그랬다.

-
'과잉'적응의 1년, '기능인'이 된 10명


따라서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임기 1년차에 대한 당 내부로부터의 평가
기준은 명확하다. 그것은 적응론도 아니고 극복론도 아니다. 언론과 시민단체의 기준과도 물론 다르다. 당내의 기준은 '거대한 소수' 전략의 성패
여부다. 그리고 바로 이 기준에 견주어 보았을 때 지난 1년의 총점은 그리 높지 않다.

사실 원내에 처음 들어가서 그 정도
활동이라도 한 게 어디냐는 평가도 있다. 필자 역시 일정한 적응기의 필요성에 대해 결코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적응을 해도 너무
했다는 데 있다. 적응론의 원래 논지와도 상관없는 '과잉'적응이 나타나고 있다.

의원들은 상임위원회에 한 사람씩 배치되고 나서
해당 분야의 입법 활동에 과도하게 매몰되기 시작했다. 국정감사를 거치면서 원심력은 더욱 강해졌다. 10명의 의원은 국회 의사 일정에 누구보다
충실한, 저마다의 우물 속의 정책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에는 법안 심사와 행정부 감사를 업으로 하는 '기능인' 10명이 생겼다.


그런 일이라도 제대로 하는 게 어디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거대한 소수'라는
민주노동당의 의정 전략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게 바로 이러한 기능인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이 전략을 실현하려면 10명의 의원들은 '정치가',
그것도 대중운동과 결합된 정치가라는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모델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런데 기능인은 이러한 기대에
부합하기는커녕 기성 정치인의 자질에도 미달한다. 특히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 color=#993366>'소수'정당이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선택과 집중에 실패하고 있다. 작년에 민주노동당이 발의하여
국회에서 통과된 3개 법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이었다. 이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이 법안이 통과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동당이 특별히 뭘 잘해서가 아니라) 지난 수년간의 치열한 장애인 운동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민주노동당이 제출하는 법안은 아마 민주노동당을 제외한 대다수의 반대로 부결되거나 아니면 만장일치로 통과될 것이다. 그리고 후자는 항상
엄청난 대중적 압박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러한 수준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지 않고서는
민주노동당의 약속을 일부라도 결코 실현시켜낼 수 없다
는 것이다. 3년밖에 안 남은 제한된 시간 안에 그걸 해내자면 극소수의 사안을
엄선해서 여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건, 의원들은 상임위원회마다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나머지 역할은 당원들이 떠맡는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10명의 의원들 모두가 그 두 서너 과제의 미친 듯한 전도사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둘째, 원내 활동의 중요한 순간마다 잘못된 전략적 판단들이 나타나고 있다.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말했지만, 정치야말로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이며 곧 메시지다. 국회의원이 제시하는 정책도 정책 이전에 메시지다.
국회의원이 던지는 표도 투표 행위 이전에 메시지다. 인간사의 모든 메시지들 중 가장 간절한 것은 연애편지일 것이다. color=#993366>의원들의 모든 활동은 마치 그 연애편지처럼 절박한 메시지여야 한다. 그것도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에게 부치는 편지여야 한다. 한데, 적어도 지금까지의 의원단 활동은 그렇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 두 가지만 들겠다.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이 한창일 때 이해찬 국무총리 인준 투표가 있었다. 이 때 의원들 다수의 견해는 '총리로서 별 문제 없는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마치 무슨 체조경기 심사위원이라도 돼서 어느 점수판을 들까 고민하는 사람들 같은 태도였다. 신임 투표를 이라크 파병에 대한
반대 의사를 표현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은 당 최고위원회의 논의 과정에서야 나왔다. 소위 의원단과 최고위원회의 불협화음이 이야기된 것이
이 때부터지만, 대중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정치 행위의 본령을 제대로 포착한 쪽은 후자였다.

또 다른 예는 작년 말
열린우리당·민주당과의 '개혁 공조' 시도다. 바로 이 시기에 정부의 비정규직'보호'법안(사실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것을 '보호'하는 법안)이
공개되어 비정규연대회의의 열린우리당사 점거 농성 등 반대 투쟁이 시작됐다. 그런데도 의원단은 이 사안을 공조 전술 추진을 중단해야 할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과의 협상의 주요 조건으로서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 경우에는 잘못된 메시지의 발신이 문제였다. 의원단의
선택은 누구에게나 민주노동당이 '노동자'보다 '개혁' 쪽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로 다가갔다. 당내에 '열린우리당 2중대가 되자'는 문건이 나돌아
물의를 일으킨 바 있지만, 사실 그것은 이미 발송된 유해 전파를 중계한 것에 불과했다. 그 전파의 발원지는 의원단이었다.

셋째,
너무도 소중한 4년의 임기에 벌써부터 누수와 낭비가 나타나고 있다. 국회 일정이 정치 일정이
아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의 하루하루는 마치 국회로 출근하는 공무원 마냥 국회 일정에 따라서만 돌아가는 것 같다. 정치에는 그것과는 다른
리듬이 있다. 리듬에는 여운이 있고 자연히 다음 소리에 대한 기대가 따른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정기국회 이후 그 여운을 남기고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데 실패했다. 최근 민주노동당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당 소속 의원들의 활동 모습이
잘 안 보였다는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잘못들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게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던
것이다.  

- 1년 전의 마음 졸이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자

이 글을
준비하면서, 1년 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의원 후보 예비선거에 나선 지금의 의원들이 당시 당원들에게 제시한 공약들을 훑어봤다. 그 중에는
"2005년 메이데이에 국회의사당 본관 앞마당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대회를 갖겠다"는 사뭇 가슴 뛰는 약속도 있었다.


어쩌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불과 1년 전의 그 가슴 졸이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 그리고 그 마음으로 지난 1년과
남은 3년을 바라보자. 진보정치의 이상이 현실정치의 틀과 끊임없이 긴장을 빚으리라는 것은 그 때부터 이미 분명하지 않았는가. 그 때는 포부였던
게 지금은 새삼스럽게 변명 거리가 될 수는 없다.

이제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언제 비례대표 의원직을 반납해야 할지 모른다는 각오로,
다음 번 출마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다시금 당의 약속을 실현하기 위한 전투들에 일선 사령관으로 나서야 한다. color=#993366>한 동안 국회의원이라는 새로운 임무에 취해 있었다면 이제는 다시 한 번 노동자·민중의 지도자라는 말에서 자신을 확인해야
한다. 소위 '동료' 의원들의 눈총이 아니라 당신들의 진정한 동료, 냉소 어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선과 희망을 잃은 가난한 서민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
'거대한 소수'의 무기로 자신을 던져야 한다. 그럴 때, 10만의 당원들이 원군으로 나설 것이다. 100만의
새로운 지지자가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합류할 것이다. 1000만의 민심이 흔들릴 것이다.

2005/04/24 04:17 2005/04/24 04:17
2005/04/23 23:06 2005/04/23 23:06
가족과 생애 short essay "가족에 대한 단상“

다르면서 같은

사회과학부 4학년 백아형

2년전 가족과생애 수업시간, 두 번째 시간에 교수님께서는 ‘가족’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내려보라 하셨고, 나는 노트에 연필로 이렇게 적었다. “죄책감만큼의 그리움, 부담감만큼의 애틋함.”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열여덟살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였다. 자퇴의 이유야 어떤 것이었든 그보다 중요한 사실은, 고등학교를 중퇴한, 최종학력 중졸인 자식이 너무 남부끄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는 이혼을 이야기하셨고, 어머니는 그에 대해서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다행히도 나의 부모님은 이혼을 하지 않으셨고, 나는 고졸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생이 되었지만, 그때의 일은 나에게 오래도록 상처로 남아있다. 내가 가족 해체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그랬고, 나의 학력이나 혹은 내가 선택한 무엇에 따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정해진 이상적인 모습의 인생, 아무런 근거없이 전승된 행복한 웃음이 가득한 가족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그랬다.
“행복한 가족” 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실체는 무엇일까. 또 그 존재 근거는 무엇일까. 인생에 기쁨과 좌절 희망과 비애가 있듯이, 가족에서도 그러한 굴곡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은 행복하고 위안을 주고 휴식과 회복의 근원이 된다고 생각하는 그 관념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부르주아 가족 이데올로기’에서는 재생산이라는 영역을 무보수형태의 노동을 하는 가족에게 담당하게 함으로써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한 부르주아 가족 이데올로기에서부터 행복한 가족의 이데올로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재생산이라는 영역의 효과적인 담당을 위해서 행복을 강요하기 시작하였고 가족은 행복해야만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그 행복한 가족의 실체는 ‘행복’이라는 관념의 정형을 두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형태의 가족들을 제거 해 나감으로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다소 폭력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나는 여기에서, 행복이라는 것은 어떤 정해진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가정폭력, 가정불화와 같은 고통스럽기만 한 가족의 형태를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라는 굴레를 벗어났을 때, 더욱 편해질 수 있는 관계도, 상황도 있는 것이다. 주지해야 할 것은, 행복한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 안에서 가족을 바라보고 ‘가족의 해체’ 운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냥 행복할 수만은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강요된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구성원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그 희생을 담보로 한 행복을 또 어떤 구성원은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상상속의 행복한 가족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아무런 이유없이 이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하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다르면서 같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족이다. 그 개인의 삶의 형태는 다르면서 같고, 그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가족의 모습도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점에서 같지만, 그 행복의 구체적인 형태와 그 실현 과정에서는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같은꿈을 꾸고, 같은 이상향을 위해 다르게 고민하는 사람들이 하나의 가족이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유대감, 사랑, 애정과 같은 그러한 것들, 그리고 경제관계 사회관계같은, 이제는 필요조건과 같이 되어버린 그런 조건들. 결혼시장에서 자신을 상품으로 내 놓고 또 상품을 삼으로서 이미 우리는 모두 상업적 매매춘에 종사하고 있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주1 : 김규항, 상업적 매매춘에 관한 진실)을 굳이 들지 않고서라도, 앞서 이야기한 부르주아 가족 이데올로기를 다시 상기하지 않더라도, 가족형성의 많은 부분은 유대감이나 사랑, 애정과 같은 것들 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체제 안에서 그 체제의 유지를 위한 체제내적인 이유가 더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가족관계 안에서 그러한 체제내적인 이유들을 숨기고, 유대감과 사랑, 애정과 같은 그러한 이유들을 더욱 크게 외치고 있다는 점에서 행복한 가족의 이데올로기가 존재해야 하는 필연성을 어렵지 않게 생각 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가족의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배제하고서라도,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인지 이야기 하고자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사랑은 노동’이라고 이야기한다. 박노해의 시의 어느 구석에는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이라는 구절이 있다.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이라고 정의하기에는 아직 나의 사색은 부족하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형태를 지니지 않은 감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사랑은 어떤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주체의 실천을 담보로 한 노동이라는 것이다. 그 것이 언제나 즐거울 수 없고, 언제나 행복할 수 없다. 즐겁지 않은 사랑도, 행복하지 않은 가족도 있는 것이다. 그 즐겁지 않은 사랑과 행복하지 않은 가족 관계를 지속하고 지속하지 않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구체적인 실천, 지루한 노동 없이 즐거운 사랑, 행복한 가족을 꿈꾼다면, 아마도 그 꿈은 이루어 지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 많지 않지만 연애의 경험도 있고, 앞으로 좀 더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사람과 어떤 가족을 이루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삶의 불확정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확정성으로 가득한 삶의 그 어느 부분도 사랑한다. 과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과정에서 일희일비 하지 않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한다. 그 뿐이라고 생각한다.

데릭 커크 킴의 만화책 제목. 그리고, 성장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 거쳐갈 과정.



사실을 말하자면,
쉬고싶다.
뭐 하나 한것도 없는데, 그런데 너무 피곤하다. 쉬고싶고 또 외롭다. 항상 피곤하고 쉬고싶다는 생각은 열심히 하지 않을때 찾아오는 것을 안다. 쉬게된다면, 지금도 하는둥 마는둥인데 손을 놓게된다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것 같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그리고 내가 쉴 수 없는 객관적인 상황 때문에 꾹 참고 참고 참지만. 쉬고싶다. 이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해서 제자리에 맴돌고있다. 그게 힘들다.
2005/04/20 00:53 2005/04/20 00:53
아직 바람은 싸늘하지만, 산수유,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들꽃들에 이어 목련은 지금이 딱 좋은때, 그리고 벚꽃도 하루가 다르게 지평선을 하얗게 채워가고 있다. 더불어 발정기의 고양이, 알러지도 기승을 부리는 시기. 가슴 한켠이 아직 싸하고 너덜너덜한 몸과 마음이 계절의 변화를 피로로 가져오지만, 이제는 봄.
일방적인 전투의 흔적, 손의 상처는 슬슬 회복이 되었지만 손가락이 구부러진 장애를 남겼고, 다잡고 시작한 운동은 심한 감기로 작심 이일이 되었지만 3분을 못뛰는 체력의 문제를 느끼게 해주었다. 새로 시작한 경제학 복수전공은 대체 무슨수로 사회를 사지선다와 식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도식화된 명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나의 사고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주었고, 일찍 일어나 학생회 조회를 하고 작정한 만큼의 학습을 하는 나의 하루도 아직은 성과보다는 피로감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코와 눈을 자극하는 황사의 거칠음 만큼, 항히스타민제의 몽롱함만큼, 봄빛 밝은 태양 아래 찌푸려야 하는 약시의 피로감 만큼, 아직도 이겨내야 할 것은 이렇게나 많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에게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도 마음 속에 담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씨를 뿌려야 할 때다. 고민도 싹을 틔우고 쑥쑥 자라면 뭔가 조금은 달라지겠지.
2005/04/15 21:51 2005/04/15 21:51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되나는 것을

- ⌜실천문학⌟ 43호


벌써 학기가 시작된지 한달이 지나가고있다. 동아리 선배들의 매주에 걸친 4차례의 경조사도 있었고. 1학년 아이들도 받았고 난 이제 벌써 시험을 앞두고 있다. 붕대를 감은손은 여전하고, 나름대로 대학원도 가고싶다고 생각 했는데 공부는 전혀 하지 않고, 독서와 운동을 꾸준히 해야하는데 뭐 그것도 잘 안된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꾸준히 변화하고 있다. 매일 매일 같은 나날들 속에서 소모되는 것과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의 차이는, 진보하고 있음에 대한 확신과 낙관의 차이가 아닐까. 일희일비하지 말고 길게 호흡하며 살아가야겠지만, 나는 왜 모를까. 나의 오늘 하루도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사실을.
2005/03/29 01:10 2005/03/29 01:10

이계삼 선생님이 월간 <우리교육> 4월호에 쓴 글입니다. 전교조 운동과 교육운동 전반에 관해
생각해오던 것을 쓴 것인데,
target=_blank>다음카페 나락한알에 있는
것을 퍼왔습니다. 


지난 3월 18일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관악위원회 당원 교육토론에서 발제를 해주신 이철호 선생님이 교육에
있어서 빈곤과 양극화, 불평등을 강조하시며, 이에 관심을 가질 것을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나서 옮겨왔습니다. 이계삼 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론 이게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한번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계삼님은 교육 공공성을 빈곤과 대립시키고 있는데, 저는 교육공공성이 이 땅의 빈곤 및
불평등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교육공공성이라는 것이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고, 또한 저보다는 교육현장에 계신 분이 더 잘 알지 모르겠지만요.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가 그저 ‘친구들 만나고 급식먹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입시 교육에 짓눌려 기계적인 교수?학습을 반복할지라도, 그 속에 가난한 아이들끼리의 평등과 우정의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반면교사처럼
이 억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빈곤’이 배려되고 보듬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입니다.


 


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의 분방하고도 거침없는 자기 표현보다는 무엇에든 서툴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웃에 대한 고운 연민이 제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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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교육’


이계삼(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1.
김진경 박복선 선생님께

<우리교육> 2월호에 실린 두 분의 대담을 읽고 제법
오랫동안 머뭇거리다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경남 밀양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두 분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대학 시절부터
저는 두 분의 성함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두 분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1학년 무렵 두 분이 함께 엮어낸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울
때>라는 산문집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을 접했던 기억이 거의 없던 제게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산문’이라는 부제가 너무나 신선했거든요. 그 책에 실린 글들도 참 좋았고, 그래서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때
저는 박복선 선생님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선생님일 거라 혼자 상상하기도 했지요). 또 이런 기억도 있네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늘 과
학생회실에서 빈둥거리던 저는 선배들이 기타로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곁에서 따라부르곤 했는데, 김진경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하는 부분의 그 아름다운 선율과
서늘한 서정이 얼마나 좋던지요. 군대 다녀와서부터는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우리교육>은 도서관 잡지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읽었는데, 그 앞머리에 실린 편집장 박복선 선생님의 짧은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우선 그것부터 먼저 펼쳐 읽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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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서신 형식으로 쓰려고
맘먹은 것도 그 대담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새삼스러운 반가움 때문입니다. 교직에 들어 조금씩 경력을 쌓아갈수록 커져만 가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무언가, 우리 교육이 처한 이 상황을 분명하게 진단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제가 마음으로 기대고 또 삶의
사표로 모시는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다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가능성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마도 그분들 또한 이
상황에 대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의 대담 기사를 숨죽이며 읽었습니다. 그 신랄함과
날카로움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 기사를 두 번째 읽었을 때 저 또한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이른바 ‘밀양
고교생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떠들썩한 소용돌이를 현장에서 겪은 뒤끝이었습니다. 언론에서 익히 보셨을 테지만, 근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이
사회는 밀양의 고등학교들과 지역 사회와 그 속의 ‘패악한 아이들’을 실컷 두들겨 팼습니다. ‘맞을 땐 맞더라도, 토론 좀 하자’는 내 속의
열망에 대해선 ‘잠자코 맞고 있어!’라고 윽박지르더니, 분이 좀 풀릴 무렵에는 총총히 다른 곳으로 떠나가더군요. 때린 자나 맞은 자나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커다란 상흔만 남긴 실로 기묘한 한판 소동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학교는 언제나처럼 다시 문을
열었고, 저는 ‘비평준화지역 2등그룹에 속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평반(우수반 아닌)’이라는 긴 꼬리표가 달린 학급의 담임으로, 도서관/학교신문
담당자로, 일주일 도합 스물여섯(보충수업, 야간 특별수업 포함) 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학교와 집을
오락가락합니다. 
 
2.
선생님,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저는 야간 자율 학습을 감독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과 차례로 면담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열명 중 세명이 편부/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중학교 내신 성적 50~60%대에 속하는, 그래도 성적향상에 대한 열망은 포기할 수 없어 노동하는 부모들의
‘고래심줄’같은 돈으로 심야 학원까지 다니지만 모의고사를 치르면 절반을 채 맞추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수시모집으로 부산 경남권의 사립대학에
근근이 입학할, 그래도 졸업하고 10년쯤 뒤에는 파출소 순경으로, 포크레인 기사로, 국밥집 젊은 사장으로 스승의 날 꽃다발을 들고 옛 담임을
찾아오기도 하는 아이들 말입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 둘 번호 순으로 복도로 불러내 공부 방법을 조언하고, 신상의 변화를 물으며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아이들은 수줍어 말이 없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끝에 녀석들의 말간 얼굴을 쳐다보다가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에 손등에다 제 손을 포개어도 봅니다. 이 아이들 중 또 얼마는, 주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일 테지만, 가난과 외로움에 몸을
떨다가는 결국 ‘즐기고 저지르는’ 어떤 삶의 길에 접어들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제가 근무하는 이 조그만 시골 고등학교 안에도
남김없이 아로새겨진 이 세상의 모습을 느낄 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학교와 세상의 담장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려서 우리는 ‘학교’ 아닌 ‘세상’
속에서 근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의 학교 안에는 이른바 ‘교실 붕괴’라는 교육적 불가능이, 입시라는
꼭지점을 향한 가없는 질주가, 천박한 중산층 의식에 깊이 물든 교사 집단의 안일과 무기력이, 초고속 성장의 단물을 흠뻑 빨아들인 소비문화의
광풍이, 풍요와 빈곤, 이 둘로 딱 쪼개진 한국의 경제가, 양심과 도덕을 제멋대로 조롱하는 타락한 한국 사회가 모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 안에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들더니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분출합니다. 가까이는 작년 연말의 대규모 수능 부정행위 사건과 우리 지역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만성질환자가 되어 잠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도 어느새 제 자리로 주저앉습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거기 있고 성장기 아이들이 12년의 시간을 거기서 보내다가 스무살이 되어
빠져나오는 것만이 분명할 따름, 이제 우리 교육의 장에 ‘확실한 그 무엇’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3.

선생님. 최시한 선생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겠지요. 저도 그 소설의 주인공 선재처럼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9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해직된 선생님이 나오진 않았지만, 한동안 온 학교를 팽팽하게 감돌던 그 긴장된
공기와, 몇몇 젊은 선생님들의 긴장된 결연한 얼굴만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사회의식이란 전혀 없는 촌무지랭이였지만, 저는 그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더니 선배들이 저희들을 ‘전교조 세대’라고 불러주더군요. 눈물이 흔한 편이기도
하지만, 저는 학교 민주광장에서 전교조 결성 전후를 기록한 사진전을 둘러볼 때마다, 거리 집회 와중에 대오 한편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뛰어나오는
해직교사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가르치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면,
싸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
이리라’던 백무산 시인의 싯구절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그때 선생님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선하고 약한
자들의 번민과 그것을 뚫고 나온 용기는 늘 보기 애처로웠습니다만 그것으로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전교조 교사! 나도 저런 존재가
되리라, 마음 속 깊이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있었습니다.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 햇살이 교실에도 가득한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것’. 돌이켜보면, 전교조 선생님들과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은 20대 초반의 제 위태로운 자의식을 지탱해준 최선의 도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 또한
전교조 교사로 살아갑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여전히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 밀양지회에서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은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또한 정의롭습니다. 올해 초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내내 발을 동동구르며 함께 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던 것에서 보듯, 전교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순수한 조직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늘 이런 질문에 시달립니다. 과연, color=#993366>‘지난 16년간 전교조는 아이들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혹은, ‘전교조는 지난 16년간
이 땅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크기를 얼마만큼 줄여주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자명하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따름입니다.
전교조는 7만의 조합원에 전임?상근 활동가들의 인건비로만 연 50억원을 지출하는, 시민사회의 가장 크고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었지만, 교실의
상황은 더욱 나빠져갑니다. 두 분 선생님이 대담에서 거듭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운동은 지난 십수년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다만 방황했을
따름입니다. 그 방황의 뚜렷한 증거는 작년 전교조 위원장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거에서
대립했던 주장은 평범하게 요약하자면 전교조를 ‘아래로부터 복원하자’는 입장과 ‘강력한 투쟁을 통해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color=#993366>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주장들이 모두 ‘교실 바깥’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을 뿐, 정작 ‘교실 안’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었다는 점
입니다. 이 두 입장은 제겐 한 사물의 다른 두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두 입장은 모두 ‘전교조
복원’을 이야기했고 방법론의 차이를 지나서 결국 같은 결론-교육공공성 수호-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전교조 조직 복원을 통해
교육공공성을 둘러싼 참호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때, 이것이 ‘교실 안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때 어느 책에서 읽은 부처님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아시겠지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은 거친 땅이고, 반대편은 좋은 땅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그는 뗏목이 너무나 소중한지라 강을 건너 산길을 가면서도 뗏목을 이고 다닙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뗏목을
이고 가지요?”라고. 
 
저는 이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이 바로 지금 전교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전교조 운동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커다란 덩치의 조합 대중조직 ‘전교조’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전교조는
아이들의 변화를 교육적 성과로 이어가는 일보다는 스스로의 존립과 유지에 더 큰 동력을 쏟아부어야하는 조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이야기겠지요. 전교조는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사랑에 기초한
조직입니다. 그 사랑을 가로막는 힘과 싸우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직(시스템)에 자신의 교육적 열정과 사랑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내면이 없는 물질이므로, 물질은 자신의 운동법칙에 따라 굴러갑니다. 전교조가 구축한 교육운동 시스템은 그 속에 담긴 교사들의
교육적 양심, 사랑과 뒤섞여 존재하지만, 물질이 정신을 밀어내는 인간사회의 법칙 속에서 시스템은 결국 어느 순간 자기 존재를 위해
운동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전교조는 지금 교육운동의 한 뗏목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요. 전교조는 교육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그래서 대개의 양심적인 교사들은 전교조에 기대는 것 이상의 교육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정작 이 조직은 자기 존립에 더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역설적인 상황 말입니다. 결국 color=#993366>전교조는 모든 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틀로 ‘교육 공공성’을 설정했지만, 실제 이것은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결과한다
는 김진경 선생님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지만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 빙자해서 교장하고 월급 타먹는
운동’으로. 
 
4.
선생님. 교육운동의 경험이 일천한 제가 운동조직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가난’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 정신이 가장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
이라고 믿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가난’했던 시절에 가장 아이다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사회의 경제 성장 이후로부터 아이다움을 잃었습니다. color=#993366>교육운동은 ‘힘’은 없었으되 열정과 사랑만으로 존재했던 시절 가장 강력했고, 그 ‘힘’을 갖춘 지금 가장
무기력
합니다. 
 
아이들은 왜 변했는가. 학교는 왜 붕괴되어 가는가. 왜 교육운동진영은 방황하고
있는가. 저는 결국 이 모든 현실을 ‘경제 성장’이라는 물질 환경의 변화의 산물로 여깁니다. 아이들의 변화는 김진경 선생님의 말씀처럼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이성의 의지’가 약해지고 ‘몸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만 경제적인 풍요가 낳은 정신의 타락을 흡수한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요즘 아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사유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를
가능케하는 ‘결핍’의 요소가 덜해졌기 때문에 그러할 뿐, 아이들은 지금도 스스로 결핍을 느끼는 요소-우정, 진정한 교육-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맹렬하게 사유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느낍니다) 
  
전교조의 성장은 물론 그간 치열했던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단체교섭 등을 통한 교사 집단의 물질적 환경 개선이 더 크게 작용했고, 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이 정치적
상부구조의 개선을 추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경제 성장 자체가 한계 상황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리고 ‘빈곤’이 우리 교육의 중심으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 즉 ‘빈곤’을 ‘가난’으로 풀어가야
하는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
이라 믿습니다. 김진경 선생님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 이전에 삶이
붕괴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뚜렷한 경향에 대해 집중하는 길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대안학교나, 혹은 매우 합리적인 질서가 정착된 공교육 속의 학교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어떤 대안 학교는 100억원이나 되는 자금과 비판적인 교양인 양성이라는 이념까지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비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비교를 단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미학적
고려라고는 전혀 없는 낡은 건물에서부터, 속물적인 교육관, 비평준화 지역의 맹렬한 경쟁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감옥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청춘을 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가 이 학교에 대해 회의를 느낄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가 그저 ‘친구들 만나고 급식먹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입시 교육에 짓눌려 기계적인 교수?학습을 반복할지라도, 그 속에 가난한 아이들끼리의 평등과 우정의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반면교사처럼 이 억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빈곤’이 배려되고 보듬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
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육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적 성장’을 위시하여 개인 단위의 ‘성장’ 개념에 대해 갈수록
회의하게 됩니다. 교사는 다만 ‘우정’을 위해 존재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생산적인 담론은
무엇일까요? 우선 저는 전교조를 위시한 교육운동 진영이 ‘가난’과 ‘결핍’ 그리고 ‘힘없음’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라는 고추상적인 담론, ‘교육공공성’이라는 현재로서는 중산층의 가치에 기울어진 논리보다는 그저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현실을 부여안는 것이라 믿습니다. 가난에 대한 성찰, ‘빈곤’을 ‘가난’으로 보듬어안는
교육, 중산층의 자기 한계를 넘어 가난한 자들과 연대했을 때 우리 교육운동이 그 아름다움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복선 선생님이 대담 가운데서, 그리고 ‘하자작업장’ 소개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탈근대적 교육관에 대해 부담을 느낍니다. 이것은 결국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일부 중산층의 교육관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요. 그런
교육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과 어떤 연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olor=#993366>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의 분방하고도 거침없는 자기 표현보다는 무엇에든 서툴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웃에
대한 고운 연민이 제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5.
선생님. 글을 써 놓고
보니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제 스스로 막연한 느낌으로만 가두어두었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펼쳐놓은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펼쳐놓을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의 대담에서 던진 이야기들이 실마리를 던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우리 교육이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즉 전교조 결성 초기의 선한 열기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 시절 제가 보낸 고교 3년을 회상하는 것은 참으로 심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몇몇 젊은 선생님들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일생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나중에 여쭈어보았더니 그 무렵이 교협에서 전교조로 넘어갈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color=#993366>생전 영어 수업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거의 않던 분께서 흑판에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쓰고 고요히 우리들에게
이 시의 속뜻을 물으셨을 때, 아이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서 수학 문제를 못 풀면 엄격하게 체벌하시던 선생님께서 어느날 수업시간에 1970년대와
전태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우리 학교에서 평교사 협의회의 핵심으로 소문난 어느 선생님이 빈 수업 시간 교정 스탠드에서 골똘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그 3년의 모든 암울한 기억에 값할 만큼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습니다.
그 시절 그분들은 아무 힘도
없었고, 학교는 말할 수 없이 억압적이었으며, 우리들은 모두 가난했지만, 그 모든 것을 일거에 넘어서는 귀한 배움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난’과 ‘결핍’, '힘없음'이 빚은 진실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힘’과 ‘시스템’이,
혹은 탈근대적인 담론으로 정연하게 완비된 어떤 틀도 결코 좋은 교육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교육은 그저 땀이자 숨결이고 사랑일 뿐,
그 정신의 가난함 외의 어떤 완숙한 물적 조건도 부차적이며, 오히려 해악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까마득한 선배 선생님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참으로 겸연쩍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들의 생각의 핵심을 잘못 짚고 이야기한 것이라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목말라했던 사람은 아마 저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고민이 우리 교육의 장에서 한 의제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겁도 없이’ 이 무모한 글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제게 던진 소중한 성찰을 내내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몇 발 앞선 자리에서 우리 교육의 길을 열어젖히고자 애태우시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저도 닮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두 분 선생님들께 반가움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이계삼 선생님이 월간 <우리교육> 4월호에 쓴 글입니다. 전교조 운동과 교육운동 전반에 관해
생각해오던 것을 쓴 것인데,
target=_blank>다음카페 나락한알에 있는
것을 퍼왔습니다. 


지난 3월 18일에 있었던 민주노동당 관악위원회 당원 교육토론에서 발제를 해주신 이철호 선생님이 교육에
있어서 빈곤과 양극화, 불평등을 강조하시며, 이에 관심을 가질 것을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나서 옮겨왔습니다. 이계삼 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부분
공감합니다. 물론 이게 옳다고 말하기보다는 한번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이계삼님은 교육 공공성을 빈곤과 대립시키고 있는데, 저는 교육공공성이 이 땅의 빈곤 및
불평등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교육공공성이라는 것이 애매하고 추상적으로 포장되고 있는 것이 문제일 수도
있고, 또한 저보다는 교육현장에 계신 분이 더 잘 알지 모르겠지만요.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입니다.


 


 이 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가 그저 ‘친구들 만나고 급식먹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입시 교육에 짓눌려 기계적인 교수?학습을 반복할지라도, 그 속에 가난한 아이들끼리의 평등과 우정의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반면교사처럼
이 억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빈곤’이 배려되고 보듬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입니다.


 


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의 분방하고도 거침없는 자기 표현보다는 무엇에든 서툴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웃에 대한 고운 연민이 제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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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교육’


이계삼(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1.
김진경 박복선 선생님께

<우리교육> 2월호에 실린 두 분의 대담을 읽고 제법
오랫동안 머뭇거리다 이 글을 씁니다. 저는 경남 밀양의 한 사립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두 분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대학 시절부터
저는 두 분의 성함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두 분을 처음 알게 된 건, 대학 1학년 무렵 두 분이 함께 엮어낸 <꽃이 사람보다 아름다울
때>라는 산문집을 통해서였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3년 내내 교과서 말고 다른 책을 접했던 기억이 거의 없던 제게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
산문’이라는 부제가 너무나 신선했거든요. 그 책에 실린 글들도 참 좋았고, 그래서 그 책을 여러 권 사서 친구들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납니다(그때
저는 박복선 선생님을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선생님일 거라 혼자 상상하기도 했지요). 또 이런 기억도 있네요.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늘 과
학생회실에서 빈둥거리던 저는 선배들이 기타로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을 곁에서 따라부르곤 했는데, 김진경 선생님의 시에 곡을 붙인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라는 노래를 처음 듣고선 얼마나 감탄했는지 몰라요. ‘벗이여, 어서 오게나 움푹 패인 수갑 자욱 그대로’ 하는 부분의 그 아름다운 선율과
서늘한 서정이 얼마나 좋던지요. 군대 다녀와서부터는 비록 떨어지긴 했지만 임용고사를 준비하면서 <우리교육>은 도서관 잡지실에서
빠뜨리지 않고 읽었는데, 그 앞머리에 실린 편집장 박복선 선생님의 짧은 에세이를 참 좋아해서 우선 그것부터 먼저 펼쳐 읽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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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해맑은 웃음을 위하여 -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제가 이렇게 장황하게 선생님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것도, 그리고 이 글을 서신 형식으로 쓰려고
맘먹은 것도 그 대담 기사를 읽으면서 느꼈던 새삼스러운 반가움 때문입니다. 교직에 들어 조금씩 경력을 쌓아갈수록 커져만 가는 갈증을 느끼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무언가, 우리 교육이 처한 이 상황을 분명하게 진단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 주변에도 제가 마음으로 기대고 또 삶의
사표로 모시는 선생님들이 계시지만, 다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주어진 가능성에만 최선을 다하자”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마도 그분들 또한 이
상황에 대해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분의 대담 기사를 숨죽이며 읽었습니다. 그 신랄함과
날카로움에 약간의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 그 기사를 두 번째 읽었을 때 저 또한 무언가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때 저는 이른바 ‘밀양
고교생 성폭행 사건’을 둘러싼 떠들썩한 소용돌이를 현장에서 겪은 뒤끝이었습니다. 언론에서 익히 보셨을 테지만, 근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 이
사회는 밀양의 고등학교들과 지역 사회와 그 속의 ‘패악한 아이들’을 실컷 두들겨 팼습니다. ‘맞을 땐 맞더라도, 토론 좀 하자’는 내 속의
열망에 대해선 ‘잠자코 맞고 있어!’라고 윽박지르더니, 분이 좀 풀릴 무렵에는 총총히 다른 곳으로 떠나가더군요. 때린 자나 맞은 자나 아무것도
배운 것 없이 커다란 상흔만 남긴 실로 기묘한 한판 소동이었습니다.
 
그리고 3월, 학교는 언제나처럼 다시 문을
열었고, 저는 ‘비평준화지역 2등그룹에 속하는 인문계 고등학교 평반(우수반 아닌)’이라는 긴 꼬리표가 달린 학급의 담임으로, 도서관/학교신문
담당자로, 일주일 도합 스물여섯(보충수업, 야간 특별수업 포함) 시간의 수업을 하면서 학교와 집을
오락가락합니다. 
 
2.
선생님, 오늘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저는 야간 자율 학습을 감독하면서 우리 반
아이들과 차례로 면담을 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눈 열명 중 세명이 편부/편모 슬하에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늘 겪는 일이지만 마음이 아픈
것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중학교 내신 성적 50~60%대에 속하는, 그래도 성적향상에 대한 열망은 포기할 수 없어 노동하는 부모들의
‘고래심줄’같은 돈으로 심야 학원까지 다니지만 모의고사를 치르면 절반을 채 맞추지 못하는, 그래서 결국 수시모집으로 부산 경남권의 사립대학에
근근이 입학할, 그래도 졸업하고 10년쯤 뒤에는 파출소 순경으로, 포크레인 기사로, 국밥집 젊은 사장으로 스승의 날 꽃다발을 들고 옛 담임을
찾아오기도 하는 아이들 말입니다. 그 아이들을 하나 둘 번호 순으로 복도로 불러내 공부 방법을 조언하고, 신상의 변화를 물으며 그들에게 말을
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학생 티를 채 벗지 못한 아이들은 수줍어 말이 없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끝에 녀석들의 말간 얼굴을 쳐다보다가 어찌할
수 없는 애틋함에 손등에다 제 손을 포개어도 봅니다. 이 아이들 중 또 얼마는, 주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일 테지만, 가난과 외로움에 몸을
떨다가는 결국 ‘즐기고 저지르는’ 어떤 삶의 길에 접어들지도 모르지요.

선생님, 제가 근무하는 이 조그만 시골 고등학교 안에도
남김없이 아로새겨진 이 세상의 모습을 느낄 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학교와 세상의 담장은 완전히 허물어져버려서 우리는 ‘학교’ 아닌 ‘세상’
속에서 근무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대한민국의 학교 안에는 이른바 ‘교실 붕괴’라는 교육적 불가능이, 입시라는
꼭지점을 향한 가없는 질주가, 천박한 중산층 의식에 깊이 물든 교사 집단의 안일과 무기력이, 초고속 성장의 단물을 흠뻑 빨아들인 소비문화의
광풍이, 풍요와 빈곤, 이 둘로 딱 쪼개진 한국의 경제가, 양심과 도덕을 제멋대로 조롱하는 타락한 한국 사회가 모두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 안에 자리잡고 있었을 테지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들더니 이제는 이곳저곳에서 굉음을 내며 분출합니다. 가까이는 작년 연말의 대규모 수능 부정행위 사건과 우리 지역 아이들의 성폭행 사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만성질환자가 되어 잠시 엉덩이를 들썩거리다가도 어느새 제 자리로 주저앉습니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어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거기 있고 성장기 아이들이 12년의 시간을 거기서 보내다가 스무살이 되어
빠져나오는 것만이 분명할 따름, 이제 우리 교육의 장에 ‘확실한 그 무엇’은 아무것도 없어 보입니다.
 
3.

선생님. 최시한 선생의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이라는 소설을 읽어보셨겠지요. 저도 그 소설의 주인공 선재처럼 전교조가 결성되던
1989년에 고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해직된 선생님이 나오진 않았지만, 한동안 온 학교를 팽팽하게 감돌던 그 긴장된
공기와, 몇몇 젊은 선생님들의 긴장된 결연한 얼굴만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사회의식이란 전혀 없는 촌무지랭이였지만, 저는 그때부터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했더니 선배들이 저희들을 ‘전교조 세대’라고 불러주더군요. 눈물이 흔한 편이기도
하지만, 저는 학교 민주광장에서 전교조 결성 전후를 기록한 사진전을 둘러볼 때마다, 거리 집회 와중에 대오 한편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뛰어나오는
해직교사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가르치는 것이 싸우는 것이라면,
싸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
이리라’던 백무산 시인의 싯구절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그때 선생님들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선하고 약한
자들의 번민과 그것을 뚫고 나온 용기는 늘 보기 애처로웠습니다만 그것으로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주었습니다. 전교조 교사! 나도 저런 존재가
되리라, 마음 속 깊이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도종환 선생님의 시가 있었습니다. ‘나뭇잎 냄새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
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밖 햇살이 교실에도 가득한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것’. 돌이켜보면, 전교조 선생님들과
관련된 이 모든 것들은 20대 초반의 제 위태로운 자의식을 지탱해준 최선의 도덕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 또한
전교조 교사로 살아갑니다. 집회 현장에서 만나는 전교조 선생님들이 뿜어내는 기운은 여전히 선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우리 밀양지회에서 머리
맞대고 고민하는 선생님들은 건강하고 부지런하며, 또한 정의롭습니다. 올해 초 지율 스님의 100일 단식 내내 발을 동동구르며 함께 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전교조 선생님들이었던 것에서 보듯, 전교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가장 순수한 조직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저는 늘 이런 질문에 시달립니다. 과연, color=#993366>‘지난 16년간 전교조는 아이들의 영혼의 성장과 자유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혹은, ‘전교조는 지난 16년간
이 땅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의 크기를 얼마만큼 줄여주었는가’
하는 질문 말입니다. 자명하지만, 상황은 더욱 나빠졌을 따름입니다.
전교조는 7만의 조합원에 전임?상근 활동가들의 인건비로만 연 50억원을 지출하는, 시민사회의 가장 크고 영향력있는 집단이 되었지만, 교실의
상황은 더욱 나빠져갑니다. 두 분 선생님이 대담에서 거듭 주장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운동은 지난 십수년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다만 방황했을
따름입니다. 그 방황의 뚜렷한 증거는 작년 전교조 위원장 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선거에서
대립했던 주장은 평범하게 요약하자면 전교조를 ‘아래로부터 복원하자’는 입장과 ‘강력한 투쟁을 통해 복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color=#993366>당혹스러웠던 것은 이 주장들이 모두 ‘교실 바깥’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을 뿐, 정작 ‘교실 안’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있었다는 점
입니다. 이 두 입장은 제겐 한 사물의 다른 두 측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 두 입장은 모두 ‘전교조
복원’을 이야기했고 방법론의 차이를 지나서 결국 같은 결론-교육공공성 수호-에 도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전교조 조직 복원을 통해
교육공공성을 둘러싼 참호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을 때, 이것이 ‘교실 안 아이들’의 삶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는 그때 어느 책에서 읽은 부처님의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아마 선생님들도 아시겠지만,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강을 사이에 두고 이곳은 거친 땅이고, 반대편은 좋은 땅입니다. 결국 누군가가 뗏목을 엮어 강을
건넙니다. 그런데 그는 뗏목이 너무나 소중한지라 강을 건너 산길을 가면서도 뗏목을 이고 다닙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뗏목을
이고 가지요?”라고. 
 
저는 이 ‘뗏목을 이고 가는 사람’이 바로 지금 전교조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전교조 운동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이 커다란 덩치의 조합 대중조직 ‘전교조’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상념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전교조는
아이들의 변화를 교육적 성과로 이어가는 일보다는 스스로의 존립과 유지에 더 큰 동력을 쏟아부어야하는 조직이 되고
말았습니다. 
 
좀더 깊이 들어가자면 이런 이야기겠지요. 전교조는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사랑에 기초한
조직입니다. 그 사랑을 가로막는 힘과 싸우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조직(시스템)에 자신의 교육적 열정과 사랑을 의탁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은 내면이 없는 물질이므로, 물질은 자신의 운동법칙에 따라 굴러갑니다. 전교조가 구축한 교육운동 시스템은 그 속에 담긴 교사들의
교육적 양심, 사랑과 뒤섞여 존재하지만, 물질이 정신을 밀어내는 인간사회의 법칙 속에서 시스템은 결국 어느 순간 자기 존재를 위해
운동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전교조는 지금 교육운동의 한 뗏목이 되어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이 아닐까요. 전교조는 교육운동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성장했고, 그래서 대개의 양심적인 교사들은 전교조에 기대는 것 이상의 교육적인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하는데, 정작 이 조직은 자기 존립에 더 큰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이 역설적인 상황 말입니다. 결국 color=#993366>전교조는 모든 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선의 틀로 ‘교육 공공성’을 설정했지만, 실제 이것은 중산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결과한다
는 김진경 선생님의 주장은 다소 과격하지만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아이들 빙자해서 교장하고 월급 타먹는
운동’으로. 
 
4.
선생님. 교육운동의 경험이 일천한 제가 운동조직론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만 ‘가난’과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 정신이 가장 온전하게 존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
이라고 믿습니다. 
 
이 땅의 아이들은
‘가난’했던 시절에 가장 아이다웠고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사회의 경제 성장 이후로부터 아이다움을 잃었습니다. color=#993366>교육운동은 ‘힘’은 없었으되 열정과 사랑만으로 존재했던 시절 가장 강력했고, 그 ‘힘’을 갖춘 지금 가장
무기력
합니다. 
 
아이들은 왜 변했는가. 학교는 왜 붕괴되어 가는가. 왜 교육운동진영은 방황하고
있는가. 저는 결국 이 모든 현실을 ‘경제 성장’이라는 물질 환경의 변화의 산물로 여깁니다. 아이들의 변화는 김진경 선생님의 말씀처럼 (디지털
문화의 확산으로) ‘이성의 의지’가 약해지고 ‘몸의 의지’가 강해지면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만 경제적인 풍요가 낳은 정신의 타락을 흡수한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요즘 아이들이 이전 세대보다 사유의 깊이가 떨어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유를
가능케하는 ‘결핍’의 요소가 덜해졌기 때문에 그러할 뿐, 아이들은 지금도 스스로 결핍을 느끼는 요소-우정, 진정한 교육-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맹렬하게 사유하고 있는 것으로 저는 느낍니다) 
  
전교조의 성장은 물론 그간 치열했던 운동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단체교섭 등을 통한 교사 집단의 물질적 환경 개선이 더 크게 작용했고, 이는 우리 사회의 경제 성장이 정치적
상부구조의 개선을 추동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 경제 성장 자체가 한계 상황에 부딪쳐 있습니다.
그리고 ‘빈곤’이 우리 교육의 중심으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힘있는 자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 즉 ‘빈곤’을 ‘가난’으로 풀어가야
하는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
이라 믿습니다. 김진경 선생님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교육 이전에 삶이
붕괴되어가는’ 우리 사회의 뚜렷한 경향에 대해 집중하는 길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교육>이나 매체를 통해 성공적으로 자리잡은 대안학교나, 혹은 매우 합리적인 질서가 정착된 공교육 속의 학교들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심지어 어떤 대안 학교는 100억원이나 되는 자금과 비판적인 교양인 양성이라는 이념까지 이상적인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제가 처한 현실과 너무나 비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비교를 단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학교는 미학적
고려라고는 전혀 없는 낡은 건물에서부터, 속물적인 교육관, 비평준화 지역의 맹렬한 경쟁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감옥같은 곳에서
아이들이 청춘을 탕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곳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제가 이 학교에 대해 회의를 느낄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학교의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가 그저 ‘친구들 만나고 급식먹는 것’ 뿐이라
할지라도, 입시 교육에 짓눌려 기계적인 교수?학습을 반복할지라도, 그 속에 가난한 아이들끼리의 평등과 우정의 가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반면교사처럼 이 억압적인 삶에 대한 성찰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빈곤’이 배려되고 보듬어질 수만 있다면, 그것은 ‘성공적인’
교육
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육의 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적 성장’을 위시하여 개인 단위의 ‘성장’ 개념에 대해 갈수록
회의하게 됩니다. 교사는 다만 ‘우정’을 위해 존재한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교육운동의 생산적인 담론은
무엇일까요? 우선 저는 전교조를 위시한 교육운동 진영이 ‘가난’과 ‘결핍’ 그리고 ‘힘없음’을 스스로 선택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라는 고추상적인 담론, ‘교육공공성’이라는 현재로서는 중산층의 가치에 기울어진 논리보다는 그저 우리 사회의
가장 가난한 현실을 부여안는 것이라 믿습니다. 가난에 대한 성찰, ‘빈곤’을 ‘가난’으로 보듬어안는
교육, 중산층의 자기 한계를 넘어 가난한 자들과 연대했을 때 우리 교육운동이 그 아름다움을 회복할 길이 열린다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박복선 선생님이 대담 가운데서, 그리고 ‘하자작업장’ 소개 등을 통해 이야기하는
탈근대적 교육관에 대해 부담을 느낍니다. 이것은 결국 자유주의적 성향을 가진 일부 중산층의 교육관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을까요. 그런
교육은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삶과 어떤 연계를 가질 수 있을까요. 제가 너무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color=#993366>머리를 빨갛고 노랗게 물들인 아이들의 분방하고도 거침없는 자기 표현보다는 무엇에든 서툴기 짝이 없는 아이들의 이웃에
대한 고운 연민이 제겐 더욱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5.
선생님. 글을 써 놓고
보니 너무나 많은 이야기를, 제 스스로 막연한 느낌으로만 가두어두었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펼쳐놓은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펼쳐놓을 생각을 하게 된 것도 선생님들의 대담에서 던진 이야기들이 실마리를 던져 주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우리 교육이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즉 전교조 결성 초기의 선한 열기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그 시절 제가 보낸 고교 3년을 회상하는 것은 참으로 심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때 제가 몇몇 젊은 선생님들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일생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나중에 여쭈어보았더니 그 무렵이 교협에서 전교조로 넘어갈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color=#993366>생전 영어 수업 이외에 다른 이야기를 거의 않던 분께서 흑판에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는 시를 쓰고 고요히 우리들에게
이 시의 속뜻을 물으셨을 때, 아이들을 교단 앞으로 불러내서 수학 문제를 못 풀면 엄격하게 체벌하시던 선생님께서 어느날 수업시간에 1970년대와
전태일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우리 학교에서 평교사 협의회의 핵심으로 소문난 어느 선생님이 빈 수업 시간 교정 스탠드에서 골똘히 책을 읽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그것이 그 3년의 모든 암울한 기억에 값할 만큼 소중한 가르침으로 남았습니다.
그 시절 그분들은 아무 힘도
없었고, 학교는 말할 수 없이 억압적이었으며, 우리들은 모두 가난했지만, 그 모든 것을 일거에 넘어서는 귀한 배움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가난’과 ‘결핍’, '힘없음'이 빚은 진실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힘’과 ‘시스템’이,
혹은 탈근대적인 담론으로 정연하게 완비된 어떤 틀도 결코 좋은 교육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믿습니다. 교육은 그저 땀이자 숨결이고 사랑일 뿐,
그 정신의 가난함 외의 어떤 완숙한 물적 조건도 부차적이며, 오히려 해악일 뿐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까마득한 선배 선생님 앞에서 이런
이야기는 참으로 겸연쩍습니다. 선생님, 제가 선생님들의 생각의 핵심을 잘못 짚고 이야기한 것이라면 용서를
부탁드립니다.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목말라했던 사람은 아마 저만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의
고민이 우리 교육의 장에서 한 의제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겁도 없이’ 이 무모한 글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두 분께서 제게 던진 소중한 성찰을 내내 간직하겠습니다. 언제나 몇 발 앞선 자리에서 우리 교육의 길을 열어젖히고자 애태우시는
선생님들의 열정을 저도 닮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두 분 선생님들께 반가움과 고마움의 인사를 전합니다. 내내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출처 : http://blog.naver.com/gimche/140011214944
오랫만에 본 따뜻한 글이라 생각한다.
조직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였지만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또 많은 동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이 또 때로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이나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교육의 공공성과 빈곤에 대한것은 글쓴이의 생각보다는 이 글을 옮겨간 사람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이지만, '진정한 교육이란 ‘가난’ ‘결핍’ 혹은 ‘힘없음’에 대해 성찰하고 연민하는 것' 이라는 현장에서의 목소리는 깊이 고민해야 할 듯 하다. 무한경쟁의 시대 무한경쟁의 교육이라 외치지만 그 한켠에는 결핍과 힘없음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고민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2005/03/24 02:09 2005/03/24 02:09

인권실천시민연대의 웹진인 사람소리 50호에 머릿글로 실린 글이 서상덕님의 글이다. 그리고 여기서는
오창익님의 시민운동에 대한 쓴소리도 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인권실천시민연대가 어떻게 분화되었고, 지금은 어떻게 연대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인권운동에 있어서는 인권운동단체들 사이에 연대가 잘 이뤄지고 있으며, 또한 건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하고 있는 운동이 '지속가능'한지, 그렇게 지속가능하면서도 운동성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면 마땅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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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ef="http://www.hrights.or.kr/" target=_blank>height=60 src="http://www.hrights.or.kr/image/050223web.jpg" width=518
border=0>

href="http://www.hrights.or.kr/note/read.cgi?board=hrights&y_number=47&nnew=2"
target=_blank>size=3>운동의 ‘지속가능성’과 지속가능한 ‘운동’


 


id=userImg2865450 style="CURSOR: hand" onclick=popview(this.src)
src="http://blogfiles.naver.net/data6/2005/2/27/149/050223saram-gimche.jpg"
onload='setTimeout("resizeImage(2865450)",200)' align=left>서상덕/ 인권연대
운영위원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지속가능한
발전(개발)’이란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한창 운동의 다양한 조류에 민감하던 대학생시절이었다. 인권운동을 얘기하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거론하는 것은 근래 들어 미래 우리의 후손들이 거닐 삶의 지형을 떠올리게 되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살려보면 ‘지속가능한 발전’이란 개념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세계 각국의 대표들과 
face=돋움 color=black>비정부 민간단체 대표들이 함께 한 가운데 열린 이른바
리우환경회의에서 '환경과 개발을 위한 리우선언'을 채택하면서 지구환경보전을 위한 기본원칙으로 설명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컸던 이들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개념은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으로 뇌리에 남아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때 이 개념이 내게
‘가슴’으로 와닿았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회주의 몰락 후 이념의 푯대를 잃고 부유하던 소위 운동진영에
있던 이들에게 이 개념은 건강한 노동이나 삶을 위한 이론으로 다가섰다기보다 현학적 지식욕을 만족시켜주는 좋은 구실
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코앞에 닥친 농촌활동 준비까지 보류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언급한 이러저런 책들을 섭렵했던 것은
그만큼 갈증이 컸던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런 무지한 탐식의 결과 그나마 오늘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개념 한 덩이가, 거칠게 표현하면 color=#993366>‘지금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것 모두가 과거, 그리고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책에서는
‘다음 세대가 필요로 하는 여건을 훼손함이 없이 현 세대의 욕구에 부응하는 수준의 개발’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변증법적 사고에서 보면 하등
새로울 게 없는 귀결이었기에 더 이상 파고들지 않았을까, 이후 ‘지속가능’이란 개념은 당장 ‘삶의 지속’을 힘들게 하는 세파 속에서 옅어져갔던
것 같다.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새삼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 예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찌됐든 지금껏
삶의 뿌리이자 전부라고 생각하며 이어온 이 운동이 ‘지속가능’할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자주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의 이면에는
지금까지 운동이랍시고 해온 것을 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놓여 있다. 이른바 소비자운동이니 무슨 권리운동이니 하는 ‘운동’이
팔리고(?) ‘운동권’이었던 게 ‘돈’이 되는 상전벽해의 시대를 살다보니 갖게 되는 혼란도 이런 생각에 일조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떠올려보면 그리 오래 전도 아닌 시기, 운동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삶을 담보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지라는 이름으로 만나는 이들 사이에는 ‘기분좋은’ 비장미 같은 게 흘렀고 웬만한 허물은 서로 덮어줄 줄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하는 지금, 비장미는 둘째치고 운동이 운동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비애가 서리는 것은 괜한
기우일까.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자본주의 사회에서 팔리는 상품(?)이 되었으니 축하할 일일지 모르지만, 문제는 한발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자신을 상품으로 내어놓기까지 한다는데 있다. 좀더 비싸게 팔리기 위해. 그러나 본질적이고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한 ‘상품화
과정’에서 드러난다. 더 잘 팔리는 상품이 되려다 보니 내용보다 포장이 우선되기도 하고 ‘경쟁’이 도입될
수밖에 없다. 그 결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를 닮아 있다. 자신의 경쟁 상대가 될 만한 ‘운동’은 아예 배제하든지 철저히 억눌러야
하는 자본주의 기제가 발동
하는 것이다.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 인권운동가의 어린 아들은 장래 꿈이 제 아버지를 닮은
‘인권운동가’라고 한다. 또 다른 인권 단체의 동지는 그런 아이의 아버지를 꼼수나 부리는 이라고 폄훼한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과연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지 되묻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억압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고 저항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학생시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던 이런 류의 구호도 ‘과연 그런 운동이 가능할까?’라는
자괴감으로 바뀌는 요즘이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우리가 해오고 있는 운동을 찾아보기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과장일까.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 지금의 운동이 지속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을 최소한 우리가 물려받은 수준’으로 다음 세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이익이 아닌 미래 세대를
위한 결단이 필요
하다. 자본 위에 눌러 앉아(그럴 수도 없겠지만) 그 달콤한 유혹을 향유할 것인지 아니면 자본이 드리우는 그늘
속으로 더 깊이 나아갈 것인지.



출처 : http://blog.naver.com/gimche/140010640923
2005/03/15 13:25 2005/03/15 13:25
'대화' <2> 홍세화 vs 고종석, '사회 연대' (하)


등록일자 : 2004년 06 월 05 일 (토) 09 : 04

 


 사회주의자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과 자유주의자 고종석 <한국일보> 논설위원.
  
  10여 년간 지인(知人)으로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두 사람의 대담은 정치적 민주화는 확장됐지만 빈부 격차 등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 연대'라는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그 답을 찾는 것으로 모아졌다.
  
  앞서 두 사람은 시민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한국 사회는 각종 집단주의가 독재정권에 의해 정치 이데올로기로 왜곡되는 과정을 거쳐, 그 결과 '집단 속에 숨어있는 이기주의자'들을 양산했다고 입을 모았다.
  
  외부로부터 이식된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형성된 재벌, 학벌, 족벌, 파벌 등 집단에 기대 있거나 집단에 숨어 있는 '벌(閥)'을 해체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에서 '사회 연대'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두 사람은 이번 4월 총선을 통해 의회 권력이 보수 우익 세력에서 자유주의 정당이라 자처하는 열린우리당으로 넘어간 것에 일정 정도 의미를 부여했다. 단 열린우리당이 진정한 자유주의 세력이라면 '벌'을 타파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전제를 달았지만.
  
  특히 이들은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지금이야말로 노무현 정부가 개혁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데, 정작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개혁에 나서는 것에 주저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두 사람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개혁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시간 동안 진행됐던 두 사람의 대담 뒷 부분에서는 언론 개혁, 교육 개혁 등 구체적인 개혁 과제와 관련된 얘기가 주로 오갔다.
  




ⓒ프레시안

  다음은 대담 뒷 부분.
  
  "상층 부르주아로 포섭된 기자들"
  
  프레시안 : 여러 가지 개혁 과제가 있겠지만 가장 공감대가 형성된 것은 언론 개혁일 것이다. 이것은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고, 오늘 우리가 얘기할 '사회 연대'와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언론 개혁이 말해진 지는 굉장히 오래됐는데 가시적인 성과는 여전히 안 보이는 것 같다. 언론 개혁을 추진하는 내부에서도 이견이 많이 존재하고.
  
  고종석 :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언론 개혁이) 될 것처럼 얘기하는데 별로 기대는 안 갖고 있다. 신기남 의장이 구상하고 있는 상위 몇 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해 현재의 왜곡된 시장 구도에 변화를 가하는 식의 제도적 조치들이 이뤄진다 해도 여론시장을 바꾸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과점 언론들 즉 조중동 논조가 왜 그렇게 보수적이냐. 사주들이 정말 친자본적이고 수구적인 사람이라서 그럴까? 난 그렇게 보지 않는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가 됐다. 그전까지는 기자들 월급이 한국 사회
평균이거나 더 아래였다. 그래서 아래에서 한국 사회를 볼 수 있었다.
  
  <조선일보> 등은 월급쟁이가 받는 최고 수준의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이미 '결단의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 상층부에 기자들이 들어간 것이다. 편집권 독립을 얘기하는데, 기자들이 편집장을 뽑는다고 좀 다른 논조를 주장하는 편집장이 뽑힐까? 데스크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기사를 쓰라고 하면 기자들의 논조가 바뀔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기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상층 부르주아에 포섭됐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다.
  
  홍세화 : 고 형이 잘 지적했다. 프랑스 <르몽드> 기자들의 평균 봉급은 2만4천프랑이다.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하면 월 5백만원, 연봉 6천만원 정도다. 프랑스와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거칠게 환산할 때 한 연봉 3천만원 정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프랑스와 비교해볼 때 조중동이나 방송사의
임금 수준은 너무 높다.
  
  고종석 : 이미 기자 개개인이 부르주아화한 현실에서 언론 개혁이 쉽지 않을 것이다. 방송만 해도 그렇다. MBC는 노조가 잘 떠받들어줘서 사장이 바뀌어도 개혁적인 논조다. 개혁적 사장이 간 KBS보다 더 개혁적이다. 하지만 얼마나 갈지 알 수 없다.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우익잡지인 <한국논단>에서 사상 검증할 때 방송 3사가 다 생중계했다. 이게 1996년, 고작 8년 전 일이다. 정치적 성황이 달라지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한겨레>가 창간된 지 16년이 넘었다. 물론 <한겨레>가 사회를 이만큼 바꾸는데 많은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그 신문사에서 한 때 월급을 받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겨레>가 시장점유율에서 조중동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단 자본력에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한겨레>에 엄청난 규모의 자본이 들어가면 <한겨레>의 성격이나 기자들의 성향이 변할 게 뻔한다. 아무래도 기자는 좀
가난해야 할 것 같다. 너무 가난해서는 안 되지만...... 여론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회가 너무 안락해서
'이대로 살아도 괜찮네', 이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다. 기자들은 약간 부족한 상태가 좋은데
...... 이런 걸 법으로
못 만드나. (웃음)
  
  '조선일보 품질이 좋다'는 건 '한나라당 품질 좋은 정당' 격
  
  프레시안 : (웃음)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최근에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기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 논란이 됐다.
  
  고종석 : 민주노동당 노회찬 총장이 <조선일보> 노동조합을 대상으로 강연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 같은데, 일부 언론에서 너무 심하게 몰아붙이는 것 같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홍세화 : 노회찬 씨한테 노무현 지지자들이 엉겨 붙어서.......
  
  고종석 : 다만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노조가 초청해서 간 게 무슨 잘못이냐', 이런 식의 해명은 사태를 잘못 보고 있거나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노조 가입자라고 생각이 다를까. 너무 계급 환원적인가? 물론 나는 지식인이고 계급을 초월해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걸 감안한다면 노 총장이 '<조선일보> 노조 초청' 핑계를 대는 것은 찝찝하다.
  
  한 가지 더 지적할
것은 노무현 지지자들이 노회찬 총장을 비판하기 전에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조선일보> 인터뷰 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열린우리당 인사들에게는 그런 기준을 적용 못 하나?
  
  홍세화 : 노무현 지지자들에게 아쉬운 게 바로 그런 부족한 균형 감각이다. '안티조선'이란 대의에서 출발했다면 그런 부분을 짚어줘야 한다.
  
  나는 노회찬 총장 사건과 관련해서 딱 한 마디만 하겠다. 나는 '<조선일보>가 품질이 좋다', 그건 받아들일 수 없다. 내가 <한겨레>에 몸을 담고 있어서 때문은 아니다. 그런 노회찬 씨의 말은 내가 민주노동당에 있는 노회찬 씨에게 '한나라당이 품질 좋은 정당'이라고 말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얘기다.
  
  color=#003399>고종석 : 노회찬 씨가 잠을 못 이루겠다. (웃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신문사에서도 <조선일보>는 안 본다. 그래서 품질이 좋은지 안 좋은지 모르겠다. 내 경험 공간에 <조선일보>가 없기 때문에 관심 끄고 산다.
  
  "언론 개혁, 결국 국민 의식 문제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없나?
  
  color=#003399>홍세화 : 고 형은 주로 기자들의 부르주아화에 주안점을 뒀다. 물론 중요한 부분이다. 조중동은 철저한 사익추구 집단이다. 그들이 가진 자본의 극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를 위해 언론 권력도 활용하는 것이다. 신문을 아주 성실하고 철저하게
자본의 극대화를 위한 무기로 사용한다. 그런 게 '편집이 좋다', 이런 걸로 나타나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이냐, 제도화를 통해서 뭐가 가능할까? 그 폭은 아주 좁디좁다. 물론 좁은 폭이라도 제도적 개선은 꼭 필요하다.
  
  결국은 국민들 의식의 문제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프랑스에서 '국민의 신문' <한겨레신문>이 뜬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 정말 소통이 되고 올바른 여론이 만들어지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다. 신문이나 언론이 (국민 의식을) 따라오는 것이지 언론만으로 변화가 가능한 게 아니다. 조중동은 특히 더욱더 그렇다. 언론 개혁도 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고종석 : 신문 자체의 영향력이야 점점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권력이 신문에서 인터넷 매체로 간다고 해서 자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이다. 지금은 거대 자본이 인터넷 매체에 뛰어들지 않고 있지만, <조선일보> 자체의 영향력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조선일보> 자본이 인터넷 매체와 방송에 진입할 수도 있다.
  
  어려운 얘긴지만
언론 개혁은 작고 날렵한 게릴라 언론, 풀뿌리 언론, 이런 것들이 아주 많이 만들어질 때, 결국 인터넷 매체 형태가 되겠지만, 이런 매체가 여러 가지 분야에 포진해서 각개 약진할 때 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희망은 인터넷 매체에 있다.
  
  한 가지, 과점 신문에 바라는 건 악의적인 오보를 안 하는 것이다. '기자적
양심'에서 거짓말을 쓰지 않는 것 정도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약자의 시각에서 봐라', '네 계급을 버리고 존재 이전을 해라', 이건 어려운
얘기이다. 미디어가 사회를 선도하는 건 여론 투쟁인데, 연대가 독립적 개인들이 서로 손을 잡는 것이듯 작은 언론들, 자본에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 언론들이 많이 생겨서 덩치는 안 되니까 수로 에워싸면서 싸우는 게 필요하다.
  
  홍세화 : 그런 면에서 독립 언론, 인터넷 신문, 비주류 신문, 공영방송의 노조가 정치적 입장의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그런 게 참 힘들다. 경쟁대상끼리는 극복대상 앞에서 서로 차이가 있더라도 연대를 해야 한다. 이게 바로 기본 원칙이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
  





 
 ⓒ프레시안

  고종석 :
생물체로서 감각 기관에 한계가 있으니까 멀리 있는 것은 잘 안 보이는 법이다. 탄핵 정국에 수만명이 모여 광화문 촛불 시위하는 등
대처를 잘 했다. 요새 며칠 사이에 이라크 전쟁 반대 촛불시위를 했다. 오늘도 촛불 시위를 하는데 얼마나 모일지
걱정이다.
  
  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별거
아니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다'라는 얘기다. '우리는 모두 이라크인이다'라고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연대의 감수성이 인류 바깥으로 못 뻗어나간다는 점에서 난 철저한
'휴머니스트'이다. 그런 면에서 생태주의자들의 주장에 얼른 동감이 안 간다. 인간들 사이에 얼마나 문제가 많은데....... (웃음) 소말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에 억압받는 사람들, 아픈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그들에게 연민과 연대를 하기 위해 자기 감각을 열어놓으려고 애를 썼으면
좋겠다. 이라크도 문제지만 팔레스타인도 심각한 문제이다. 일제 시대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 팔레스타인이 처해 있다. 이스라엘은 사실상
미국 아닌가? 이스라엘, 영국, 일본은 사실 미국의 한 주나 다름없는 나라로
전락했다.
  
  프레시안 : 그런 면에서
언론에 불만이 많을 것 같다.
  
  고종석 :
프랑스 <르몽드>를 보면 바깥 문제, 특히 제3세계를 다룬 기사가 1면에 실리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우리 신문은 국제
소식이 크게 다뤄지는 경우가 드물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잘한 것이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프레시안>에서 처음 보고, <르몽드> 등을 들어가 봤더니 다들 난리더라. 근데 한국은 조용했다.
한국 신문이 그 문제를 도배할 때까지 한 2~3일이 걸렸다. 우리는 다 그리스인이고 이라크 인이다. 인류의
형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
물론 자연에도 관심을 가지면 더
좋겠지만......
  
  홍세화 :
휴머니스트이니까 더욱더 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 형도 말로는 그렇지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 형 지적대로
한국 언론, 특히 공영 방송이 내놓는 외국 뉴스는 전부 토픽이다. 그걸 보고
참담했다.
  
  방금 '우린 모두 그리스인이다,
이라크인이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한국 사람은 그 부분에 있어서 한 가지는 돼 있다. 바로 '우리는 모두 미국인' 이런 식으로. 이라크인이나
그리스인은 못 될지언정 미국인은 다 돼 있다. 한국에서는 심지어 미국의 홍수, 정전 사태도 마치 한국의 일처럼 크게
다룬다.
  
  고종석 :
표현에 대한 뼈아픈 지적이다. 주를 붙여야겠다. '그리스를 미국으로 대치할 수는 없다' 이렇게.
(웃음)
  
  홍세화 : 지난 9.11 테러
당시 장 마리 콜롱바니 <르몽드> 사장이 '우리는 바로 미국인이다'라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내가 칼럼에서 '우리는 뉴욕 사람일 수는
있지만 미국인이고 싶지는 않다'고 썼다.
  
  고종석 :
한국 사람들은 미국인 한 사람의 무게와 제3세계 한 사람의 무게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결국은 아주 정확하게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 나이지리아 한 사람이 미국 사람 한 사람의 150분의 1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나이지리아 사람 1백50명과 미국 한
명이 동일한 비중, 심지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서울대 개혁, 우선
정원이라도 줄였으면"

  
  홍세화 :
아까 결국 의식이 문제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있는 것은 교육
개혁이다.
  
  고종석 : 홍 선배가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서 오라면 기꺼이 가신다는 얘기를 들었다. 홍 선배 전략은 그람시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겠다. '헤게모니를 쟁취하자.
사회 구성원으로부터 더 많은 동의를 얻어내자.'
  
  최근 서울대 폐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대가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현실적 권력이 온존하는 한 이런 논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든 변화를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지만 완전히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가든가. 학부를 유지하더라도 순수 인문학, 자연과학 등 소수의 학생들만 뽑아 엘리트 교육을 시키고 나머지
대학은 평준화하는 등 개혁을 해야 하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 박정희
정권 시절에 고교 평준화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경기고 출신들이 얼마나 저항을 많이 했는데. 지금 서울대 출신들이 전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데
서울대에 변화를 주기란 어렵다. 서울대 출신이 아닌 상층부 사람들도 자기 자식들이 서울대에 갈 가능성이 높으니 더욱더
그렇다.
  
  나는 우선 서울대 학생수라도 지금보다 확 줄였으면 한다. color=#d41a01>서울대가 규모도 크니까 점점 엄청난 권력 집단이 된다. 아주 뛰어난 사람들인데 수가 작다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이
작을 텐데
...... 최소한 지금보다 정원이라도 줄이라고 요구해야 할 것
같다.
  
  프레시안 : 서울대 개혁의 한
축이 돼야할 교수들도 너무나 기득권에 익숙해, 외부에서 서울대를 어떻게 보는지 전혀 인식하지 못 하고
있다.
  
  홍세화 : 나는 한국에서
교육자본이란 측면에서는 특혜자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인식 못했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에서 가난한 외국인 노동자의 자녀인 내 자식들이 교육을
받는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단호하게 서울대 문제를 바라보게 됐다.
  
  정원을
줄이는 수준에서는 문제해결이 전혀 안 된다. 권력학교라는 게 무너져야 한다. 서울대는 지식과 부와 지위, 이 모든 걸 독점하는 거대한 기득권
집단이다. 여기에 속하지 못한 다수의 사회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박탈감을 안겨준다. 서울대의 권력독점 문제로 일어나는 사회악이 너무
심각하다.
  
  고종석 :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의 저항도 엄청나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color=#003399>홍세화 : 그러니 싸워야 한다. 교육혁신위에서 공동학위제 얘기가 나오는 등 과거에 비해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 이 기회에 서울대를 정점으로 한 대학 서열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판갈이가 있어야
한다.
  
  대학서열화로 고등학교 교육이 완전히 왜곡돼 있다. 유엔 아동권리위에서 제기했듯
교육과정 자체가 인권침해 과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자라면서 인권 의식을 가질 수 없다. 또 아주 심한 경쟁체제라서 연대 의식을 가질
수도 없고.
  
  "한국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생동안 두 번만
긴장"

  













border=0> 
ⓒ프레시안

  고종석 :
끔찍한 계급투쟁의 연속이다. 입시는 계급투쟁이다. 궁극적으로 어느 대학이든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하기는 어렵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경쟁력하고도 부합한다.
  
  홍세화 :
동의한다. 입시 위주 교육으로 경쟁의식만 가득 차고 비판의식은 갖지 못한다. 기득권
세력들은 엘리트 교육과 교육 경쟁력을 얘기하곤 하는데, 한국의 엘리트가 엘리트냐. 엘리트는 능력과 사회적 책임을 가져야 한다. color=#d41a01>한국의 엘리트는 능력도 부족하고 사회적 책임 의식도 없다. 극심한 경쟁 과정을 통해서 선택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상
심리만 있다.
이게 서울대 출신 기득권자가 보여주는 모습이다. 경쟁력은 경쟁력을 외친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서울대가 학문
경쟁력이 있는가?
  
  고종석 : 입학만 하면
졸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세화 :
대학이 서열화 돼 있기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경쟁이 이완된다. 졸업장만 받으면 되니까 자기 성숙은 절대 모색 하지
않는다.
  
  한국은 사회 구성원들이 일생에 걸쳐 딱 두 번밖에 긴장하지 않는다. 대학 입시와
취업. 경쟁력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자기 성숙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계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런
게 없으니 한국은 애초 석학이나 뛰어난 과학자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color=#d41a01>경쟁력을 위해서도 권력 학교인 서울대는 퇴출돼야 한다. 아니면 권력과 관계없는 인문학, 기초과학 이런 부분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양성하기 위해 남든지. 그것도 자신 없으면 국ㆍ공립대 평준화를 통해 걸러진 아이들이 학문 공동체 속에서 연마되는 식으로 가야
한다.

  
  고종석 : 학벌
사회와 학벌 없는 사회는 사회 전체 행복의 총량이 큰 차이가 날 것이다.
  
  color=#003399>홍세화 : 프랑스는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통해 대학에 들어간다. 대개 고교 졸업자의 70%가 시험을 봐서
70% 정도가 합격한다. 이 중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바로 올라가는 학생이 28%에 불과하다. 2년 과정을 3년 안에 마치지 못하면 대학을
떠나야 한다. 유급은 한번만 인정한다. 결국 56%가 하지 못한다. 그래서 프랑스에서는 이력서에 대학입학자격 시험을 보고 몇 년 만에
수료했는지를 아주 중요하게 기재한다. 그러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ㆍ고등학교 때 공부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은 미리부터
직업학교를 선택한다.
  
  물론 프랑스도 엘리트 교육 한다. 프랑스는 아주 소규모로 일종의
직업 전문학교를 운영해 엘리트 교육을 한다. 그게 서울대와 같은 학교는 절대 아니다. 그들이 패거리를 지어봐야 아주 작은 규모도, 또 그들끼리
좌ㆍ우 이념에 따라 경쟁을 한다.
  
  고종석 :
권력과 학위가 유착돼 있는 것도 문제다. 프랑스의 엘리트 양성 학교라 할 수 있는 고등사범학교에서는 박사 학위를 못 받는다. 여기
출신은 무조건 국립 중ㆍ고등학교 선생을 일정 기간 해야 한다. 그것을 안 하면 그간 받은 돈을 물어내야 한다. 그리고 학위를 받고 싶으면 일반
대학으로 가야 한다.
  
  홍세화 :
일부에서는 서울대가 없어지면 금방 연ㆍ고대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번 생각해보자. 서울대 없앤다고 해서 서울대
졸업생이 없어지나? 서울대 졸업생이 '연ㆍ고대가 제2의 서울대가 되는 것'을 막을 것이다. 또 서울대를 없애는 것 자체가 이미 엄청난 싸움이고,
만약 우리가 그것을 극복할 역량이 있다면 연ㆍ고대 중심으로 학벌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공교육 획일성, 평준화가 문제가 아니라 국가주의가
문제"

  
  프레시안 : 우리나라는
평준화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평준화를 옹호하는 전교조와 평준화 해체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이 대립해왔다.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자면 평준화를 근간으로 하는 공교육이 자율성이나 창조성과는 배치돼 평균적인 국민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있을 수
있다.
  
  고종석 : 나는 당연히 평준화에
동의한다. 평준화가 아니라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을 입시전쟁에 내몰게 된다.
  
  color=#d41a01>평준화라기보다는 공교육이 국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이중체제가 되어야 한다. 여러 종류의 사립학교를 만들 수 있도록
하고 사학에는 국가에서 일체 지원을 안 하는 식으로. 국가에서 지원하는 공교육은 철저히 평준화로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홍세화 : 사회
구성원의 사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교육이다. 교육 과정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적
소양을 갖춘다는 점에서 시민 의식이 기본 출발점이 돼야 한다. 사립학교도 시민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약속은 지켜줘야 할
것이다.

  
  지금 공교육이 창의성, 개성을
죽이는 이유는 평준화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 있는 국가주의 때문이다.
주입식 또는 의식화 교육, 과거에는 반공 의식화를 계속하지
않았나.
  
  그 다음에 중요한 부분이 국가의 재정 지원이다. 이는 무상교육 문제와
결부되는데, 공화주의 관점, 시민의식이란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color=#003399>고종석 : 이게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 바깥에서 국가주의가 척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가 국가주의,
애국심의 함양기관이 되기 쉽다. 학교 바깥의 시민의식이 충만해 있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우리나라 역시 국가주의가 학교를 통해 쉽게 주입되지
않나.
  
  홍세화 : 교장 임용 제도 등
각종 제도를 개혁하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국가 권력 요구를 충실하게 따를수록 교장, 교감이 되고 학교를 반(反)민주주의적이면서 권위적인
구조로 온존시키고 있다. 교장이 국가주의 교육의 충실한 마름이면서 단위학교의 제왕이 돼 있는 구조다. 이게 상당히 중요한 고리다. 이를 제도
속에서 분쇄해내는 게 개혁정권이 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병영구조다. 실제
이 땅에 근대학교를 세운 게 군국주의 일본인데, 일본이 뭘 본 따서 만들었겠냐. 바로 군대이다. 정말 나쁜 의미의 국가주의 교육이다. 반세기동안
축적돼 있는 이런 부분에 대한 반전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육 과잉상태,
무상교육하고도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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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

  프레시안 :
홍세화 선생은 아까 무상교육의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color=#003399>홍세화 : 내가 연대와 관련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상교육 문제다. 정말 한국의 교육계가 얼마나
무책임한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게 경제력이 커가는 것과 비례해서 무상교육이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무상교육 제도는 흔히 말하는 '사회 연대'의
구체적 실현의 모습이다. 서민들의 고통의 주요 내용이 교육비 문제다. 또 사교육비 문제에 있어서도 궁극적으로 공교육을 무상으로 하는 게 그
해결의 중요한 열쇠다.

  
  지금 50여년간 공교육 제도를 하면서 얼마나 물적
토대가 늘어났나. 그 과정에서 법적으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의무 교육화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미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대학교육까지 받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받지 않고는 사회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강제하고 있는 사회다. 그런데 그 비용의
대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제기 있어야 된다.
  
  이미 한국의
교육은 과잉상태다. 왜곡돼 있기 때문에 과잉이 된 거다. 그만큼 비용이 들어가고 있다. 그 얘기는 뭐냐면 무상교육을 하고도 남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교육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상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은 가능한 일이고 해야 되는
이다.
  
  프레시안 : '사회
연대'의 측면에 더 주목해서 얘기해보자.
  
  홍세화 :
무상교육을 통해 '사회 연대'라는 중요한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다. 무상교육은 계층 간 '사회
연대'이고, 세대 간 '사회 연대'의 실현이다. 교육자본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개입할 가능성이 열린다.
지금은 각자 획득한 교육자본이
사유화 돼 있다. 그러나 부모 세대로부터 또 국가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성원들이 쌓은 교육 자본은 자기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것이다.
  
  지금처럼 자기 자본을 들여, 자기가 잘나서 치열한 경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사회적 책임 의식을 기대하는 것도, '사회 연대'도 불가능하다. 무상교육 제도를 갖추는 것은 그 사회의 책임 의식과 '사회 연대'의
가능성을 연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고종석 :
앞에서 얘기한 레옹 부르주아도 무상교육을 '사회 연대'의 중요한 가치로 보고
있다.
  
  홍 선배 말대로 교육과 관련해 우리사회 개혁
과제 중 중요한 두 가지는 학벌 카르텔을 타파하기 위한 서울대 폐지와 교육 자본의 고스란한 재생산을 막을 수 있는 대학 교육까지의
무상화
일 것이다.
  
  "계층 고착화로 '개천에서 용 난다'
불가능"

  
  홍세화 :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천에서 용 난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요새는 불가능하다. 계층의 고착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도
나왔다. 그러나 계층의 고착화가 돼 가는 과정에서 강남 얘들이 점유하고 있다.
  
  이런
부분은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가 상층 계급이 경제적 자본에 의해 상징 자본도 같이 점유해나가는 문제를 지적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도
불평등 구조가 더 심화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서울대 혁파와 무상교육 문제는 더욱더 중요하다. '사회 연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본다.
  
  고종석 : 교육 자본을
포함해 상징 자본과 경제적 자본 사이에 파열을 내야 한다. 다 고스란히 독점하는 게
아니라.
  
  좀 다른 얘기지만 예전에 김영삼 정부에서 권력과 부를 같이 갖지 못하도록
하겠다면서 고위 공직자들 재산 신고를 하도록 제도화했다.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자본을 가진 사람이
한꺼번에 그것들을 다 갖는 게 아니라, 이런 자본이 있으면 저런 자본은 좀 덜 갖도록 하는 제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다른 방식으로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경제적으로 좀 모자르게 하는 그런 제도 말이다.
이것 참, 자유주의자가 할 소리는 아닌데......
(웃음)
  
  홍세화 : 그러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하라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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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경제적
민주화 진전하기 전에 '2004년 체제' 말할 수 없어"

  
  color=#003399>프레시안 : 오늘 대담 내용만 놓고 보면 고종석 선생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다. 우리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는 많이
진전했을지 모르지만 실질적 민주주의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개인이 이 사회에서 행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권리가 제약받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고종석 : 최근
<한겨레21>에서 탄핵 정국의 결과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된 현 상황에 대해 '2004년 체제'라는 말을 썼다. '1987년 체제'가
끝나고 '2004년 체제'라는 얘기인데, 전혀 말이 안 된다.
  
  1987년에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6월10일을 기점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 항쟁을 통해 6월29일 노태우 씨가 6ㆍ29선언을 했고 그 이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틀이 만들어졌다.
  
  또 그해 7, 8월 노동자들의 파업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위해서 그렇게 일어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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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세화,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한겨레신문사 펴냄) ⓒ프레시안

  '1987년 체제'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 두 개의 큰 축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6ㆍ10으로 시작한 정치적 민주화의 흐름과 7ㆍ8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시작하는 사회ㆍ경제적 민주화.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정치적 민주화의 측면은 '1987년 체제'가 꽤 진화했다. 지금도 국가보안법, 사회보호법이 있지만... 녹음기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 욕을
노골적으로 할 수도 있으니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게 아닌가? (웃음)
  
  그러나 또 하나의
축인 7ㆍ8월 노동자 투쟁이 던진 과제는 진전이 없다. 신자유주의가 유행처럼 들어오면서 또 국내 경제가 흔들리는 과정에서 '노동의 유연화'니
이런 것들이 한국사회를 점령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화 되는데 빈부격차는 더 거치는 과정에 서 있다. '1987년 체제'의 기둥이 나란히 가는 게
아니라 기울어서 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을 '1987년 체제'를 극복한
'2004년 체제'의 출발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1987년 체제'에서 그 다음 체제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프레시안 : 그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color=#003399>고종석 : 맞다. 사회ㆍ경제적 민주화는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세계체제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 해결이 쉽지
않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해 '아래로부터의 세계화'를 강조하는 이들이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 시위 이상의 이라크 파병
반대 시위가 있어야 한다. 또 우리나라에 와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옹호하는 시위가 그 정도 열정으로 일어나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의식과 감각을
다 쏟아 부어 '1987년 체제'를 완성시켜 나가야한다.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이게 단순히 남한 민중의 힘으로 안 되는 것이기에 더욱더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이라크 인이자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다.
(웃음)
  
  홍세화 : 지금 애기하는 걸
들어보면 민주노동당에 왜 안 들어오는지 이해를 못하겠어. (웃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왜 그것을 지향하는 당은
버겁다고 그러는지.
  
  프레시안 : (웃음)
고종석 선생을 옹호해야겠다. 고 선생은 책에서 "집단화되지 않는 불우한 개인들"에 관심이 있다
밝힌 적이 있다. '당'으로 포괄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히 존재
것이다.
  
  "'사회 연대'는 측은지심의
일반화"

  
  홍세화 : 결국 17대
국회가 개원하면 가시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시민권 차원의 문제다. 호주제, 국가보안법, 언론 개혁, 공무원들의 정치적 자유 등은 어느 정도
티격태격하는 중에 진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적 권리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 한국이 가지고 있는 대외 의존도 등을 감안할 때 참 한계가 많다. 거기다 이라크 파병 반대 목소리도 아주 작고. 참
어려운 과제이다. 긍정적인 전망을 하기가 어렵다.
  
  color=#003399>고종석 : '사회 연대'는 결국 자기가 있는 처지에서 사회ㆍ정치적,
상징적 자본이 모자란 사람들과의 연대
를 의미한다. 그걸 연민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 나는 '연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다 못났는데
못난 사람들끼리 한번 통해보자, 이렇게 말이다. 맹자가 얘기한 어짐의 끝머리는 측은지심이다. '사회 연대'가
측은지심의 일반화
가 아닐까?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민음사 펴냄)이라는 책에서 지적한 열림도 연대의 태도고 측은지심의 일반화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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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석, <엘리아의 제야> (문학과지성사 펴냄) ⓒ프레시안

  홍세화 :
그런 '열림'을 '열린'우리당에 요구해야 하는데 말야. (웃음)
  
  color=#003399>고종석 : 내가 열린우리당 당원도 아니고, 노무현 지지자도 아니라서 요구하기가 참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으로 해야겠다. (웃음)
  
  홍세화 :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왜 연대 의식과 멀어졌나. 인권과 관련해 부채 의식이 있다고
본다.
  
  바로 한국전쟁기에 있었던 학살 문제이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모르지만 민간인에
대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 왜 죽었는가. '공산당'의 '공'자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게 일제 부역세력을
정리하지 못한 것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하나는 가해자들에게 공격성을 더 줬다. 피해자에
속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채 의식을 줬고. 어떻게든 누명을 벗겨줬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이런 것들이 결국 한국 사회 구성원들을 '사회
연대'보다는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추한 자본주의 신봉자들로 몰고 갔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그런 의미에서 6ㆍ25 특별법
제정은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고종석 :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정작 중요한 얘기는 다 못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 마지막으로 내가 고백 하나 해야겠다. 나는 사실
'추빠(추미애 전의원 지지자)'라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다.
  
  그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나는 아주 호감을 갖고 있다. 최근의 행보는 안타깝지만 또 연민이 가기도 한다. '추빠'로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추미애 씨가
적극적으로 그 제정에 관여했던 '4.3 특별법'도 방금 홍 선배가 지적한 그런 치유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웃음)
  
  프레시안 : 앞으로 한번 더
얘기를 나눌 기회를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웃음) 오늘 좋은 말씀 감사하다.


 


강양구,전홍기혜/기자

2005/03/15 13:11 2005/03/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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