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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2010/02/09
  2. 오늘의 명대사 : 똥을 많이 싸지르는 사람이 승리한다 (2) 2010/02/03
  3. 낙관주의자 2010/01/29
  4. 深淵 2010/01/25
  5. spent a lifetime 2010/01/19
  6. 몸살 (4) 2010/01/10
  7. 2009최후의 날 (4) 2010/01/02
  8. 시간의 적자 (2) 2009/12/16
  9. 고위험군 2009/12/11
  10. 개청춘 (3) 2009/12/08

천재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3/07 17:32
Pranav Mistry: The thrilling potential of SixthSense technology


(한글 자막 선택 가능)
프로란 다른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사람들, 이라고 H2에서 그랬던 것 같은데, 이쯤하면 정말 사람들에게 꿈을 꿀 수 있게 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을 만드는 건 상상력. 필요한 건 전문성과 실천력.

2010/03/07 17:32 2010/03/07 17:32

까불지 마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2/11 23:04
오늘도 어김없이 클릭클릭 정보의 바다를 표류하다가 삶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얻었다. 곰을 만났을 때 죽은 척 하면 안된다.
곰들은 사체를 보면 수사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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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아니고 -_-;;; 곰은 시체를 먹기 때문이라고.
기약은 없지만 언젠가 곰님을 만날 때를 대비하여 알아두자.
그리고 놀라운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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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을 만나면 하지 말아야 할 것:
까불지말것.
까불지 말 것.
까 불 지 말 것.





까 불 지 말 라 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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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개그.
어색하다.
2010/02/11 23:04 2010/02/11 23:04
どれほどの速さで生きれば、君にまた会えるのか。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가야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신카이마코토新海監督, 초속5센티미터秒速5センチメートル, 2007.

경기도에서도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살다보니, 9시에 서울로 출근을 하려면 6시부터 서둘러야했다. 6시에 집을 나서 버스를 타면 이 도시를 벗어나기도 전에 버스는 만원이 되었다. 놀라웠다. 그나마 집이 멀기에 앉아서 갈 수 있었지만, 이 위성도시의 중심에 사는 사람들은 아침부터 두시간 가까이를 버스에 서서 시달려야 했다. 꾸벅꾸벅 졸다가 서울에 내려 다시 지하철을 타고 출근지에 도착해서 근처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먹으면 그래도 여유롭게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6시에 퇴근하면 차가 밀리고, 9시나 되어야 집에 돌아와 밥을 먹었다. 다행히도, 혹은, 불행히도, 나의 새벽 6시 출근은 불연속적으로 몇 번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서웠다. 그리고 신기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도 열심히 살아가는거지. 세상 사람들은 어쩌면 모두들 이렇게 충실하게 살아 갈 수가 있는거지.
난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데. 이렇게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데.

'지금 ...씨가 앞으로 하고싶은게 뭐죠? 우리 대학원에 진학하려는 이유가 단지 취직도 안되고 해서 시간을 벌어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구체적인 목표가 있다고 설명 할 수 있는겁니까?'

아침 8시만 되어도 공공도서관의 성인열람실은 가득차곤 했다. 사람들은 도서관이 닫는 10시까지 책상에 붙어 있었다. 서류 파일을 가져와 책상 칸막이 위로 성벽을 더 높이 쌓고, 전원 연장선을 가져와 자리 옆에 미니 선풍기까지 틀며 살림을 차렸다.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었다. 거기에 체력관리와 몸매 유지를 위해 초등학교 운동장을 달리고 혼자 아령을 들고, 용돈 벌이를 위해 아르바이트도 한다.
학원엔 아침부터 학생들이 가득했다. 낮시간 학원 휴게실에선 학생들이 유창한 발음으로 영어를 읽으며 연습하고, 스터디 모임을 하고, 유학을 대비한 과외를 받기도 했다. 밤이 되면 직장인들이 몰려왔다. 일곱시 반쯤이 되면 학원 앞 **제과의 이름이 프린트 된 봉지에서 주섬주섬 빵과 우유를 꺼내 먹으며 수업을 듣는 아저씨들이 넥타이를 늦추고 앉아있었다.

'그래서 ...씨가 지금 2년, 곧 3년동안 한게 뭐죠? 이 업계에서 일하기 위한 준비를 한 것도 아니고. 차라리 공무원 시험을 봤다거나, 그게 아니면 신춘문예라도 준비했다고 하면 또 몰라요. 지금 아무리 봐도 ...씨는 거의 3년동안 그냥 시간을 보낸 것 같네요.'

사람들은 나에게 학생 같아보인다고 했다. 어려보인다는 뜻이 아니다. 한가로워 보인다는 뜻이다. 아니다. 세상 물정 몰라보인다는 뜻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아직 절박함이 없는 철없는 어린애 같아 보인다는 뜻이다. 대책없고 공허하고 허황되 보인다는 뜻이다. 아니, 학생들도 이렇게 살아가진 않는다. 다들 눈 부릅뜨고 새벽부터 밤까지 바쁘게 살아가는데, 나만 혼자 남아 하루종일 생각만 하며 누워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내 걸음걸이, 내 표정을 한 번 보기만 해도 그걸 알아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강하다.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인지, 살아 남은 자가 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강하다. 나는 유치하고 나약하다. 도태된다. 나는 뒤만 돌아보며 살아간다.

'부모인 내가 봐도 넌 절실함이 없어 보이는데 남들이 보면 오죽하겠냐.'

해 보고 싶은 주제를 몇가지 잡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그치는 동안, 몇 달이 지나면 신문에서, 서점에서, 누군가 이미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내가 생각하는게 영 아닌 건 아니다. 그러나 내가 뭐 달리 특별한 인간인 것도 아니다. 내가 하는 생각 쯤 남들도 충분히 하고 있는 것 들이고, 아이템만으로 살아갈 순 없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다. 하루에도 몇번씩 마음이 바뀐다. 당장 시급 4천원짜리 알바라도 해야한다. 아니 내가 생각하는 일을 정말 집중해서 해보자. 하루에 열시간 책을 읽고 글을 써보자.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것 뿐이다. 꾸준히 열심히 해보자. 이렇게 살 순 없다. 제 앞가림도 못하는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싶진 않다. 일단 묻지마 취업을 하자. 뭐든 해야한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아 제기랄 결혼이라도 해야하는걸까.
꼭 9to6 근무에 최소한 반올림해서 연봉2천은 받고, 고용 보장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이 일을 계속하면 경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갖고싶은 건 아니다. 아 물론 그런 일자릴 갖고싶다. 다른건 안 바라더라도 다음번 구직은 경력직으로 갈 수 있는 것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 보다도, 그냥 아무것이라도, 그냥 단 하나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과거의 아픔이 있기 마련인데, 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오늘의 삶이 주눅들거나 소극적이게 되는 듯 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어찌 살아가려는가 하는 것인 만큼 무엇을 이루려는지의 목적의식을 결연히 만들어가는 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번의 실패로 또 실망에 싸여 있지 말고, 하고픈 일을 좇아 자신있게 도전하고 성취하는 ...씨가 되기를 기원드리죠.'

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는다. 아니 노력은 한다. 나름대로. 하지만 다들 그정도는 하고 있다. 그다지 노력이라 할 만한 것은 없으면서, 나름대로 노력은 했노라고 변명하기 바쁘다. 과거의 뒤로 숨기 급하고, 나를 설명할 기회가 오면 방어적으로 몸을 움츠린다. 그리고 왜 내 맘을 몰라주는 거냐고 억울해 한다.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군, 혹은 세상에 적응할 준비가 아직 좀 부족하군, 이라고 생각 할 수 있었던 때가 차라리 부럽다. 이제 확실히 알고 있다. 나의 이야기가, 나의 말하는 방식이, 나의 살아가는 모습이, 내가 행동하는 방법이, 그 하나하나가, 바로 내가, 문제라는 걸. 나 때문에 안된다는 걸.

'지금 ...씨는 세상과 호흡을 맞추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할까요. 기회가 와도 그 기회에 맞춰가지 못하는거에요. 무슨 말인지 알죠?' 예 다들 그러더군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좀 더 눈빛이 생기가 있어야 하고, 좀 더 목소리도 당당해야 하고, 좀 더 말투도 자신감 있어야 하고, 말하는 속도도 좀 더 빨라야 해요. 다음주엔 좀 더 빨라져서 왔으면 좋겠네요.'

내가 뭘 어쨋길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일까?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내가 진심이라는 걸 알아줄까? 그냥 나는 이렇게 살면 안될까? 변명에 불과하겠지만, 어린애 투정에 불과하겠지만, 그렇게 하루 18시간 씩 지치지 않고 자신을 몰아대지 않아도, 그렇게 튼튼하고 열정적이고 부지런 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냐고, 여전히 생각한다.
하지만, 그냥 이런 나로 살아가기엔 내가 가져야할 자신감이란 것이 없다. 부모의 기대를 거부하면서도 인정 받기를 바랐던 어린날 처럼, 내가 하고싶진 않아도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그런 확인이 필요하다. 확인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 했다. 그까짓 것 쯤, 쿨하게 넘길 수 있다고.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 조차도 난 할수가 없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자신감을 가질 근거가 없다. 해 놓은 것이 없다. 할 줄 아는게 없다.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하지만 알고있다. 자신감은 근거가 있을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근거가 있고 그것을 믿는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당연한 인과관계일 뿐이다. 인정과는 관계 없이 스스로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자라왔고, 그걸 이겨내지 못했다.
사실 나는 인정받고 싶다. 혼자서는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유약한 종자다. 그리고 그런 자아 형성에 대해 누군가를 탓할 수도 없는 성인이 되어 버렸다.

'중3 1년동안 성적이 이렇게 떨어지다니... 공부에 뜻이 없는거냐? 글 좀 쓴다고 괜찮다고 생각하는거냐? 그렇다면 선생님이 더이상 아무 말 하지 않겠다.'

초연한 척,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나는 다른 뜻이 있다는 척 살아왔다. 그런게 아니다. 나도 잘 하고 싶었다. 다만 잘 하지 못했을 뿐이다. 거짓말은 하기 싫다고, 자기소개서를 쓸때마다 울었지만, 어쩌면 그럴싸한 거짓말 조차도 하지 못한다는 걸 숨기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그냥 아무것도 열심히 해내지 못할 뿐일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무섭다. 무서워 죽겠다. 이게 전부일까봐,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봐.

どれほどの速さで生きれば、私にまた会えるのか。


2010/02/09 18:11 2010/02/09 18:11
하지만 하마가 당시 대양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향기의 미학적 이유에서 찾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하마는 자신의 배설물에 대단히 강한 집착을 보인다. 바꿔 말해서 하마는 하루 종일 주위에 똥을 싸지른다. 주의 깊은 동물원 방문객이라면 아무리 청소를 자주 해도 하마의 우리에 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하루에 열 번이 넘게 물청소를 해도 순식간에 우리에는 다시 똥냄새가 진동한다. 이는 하마가 똥과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습성이 있어서이다.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는 꼬리는 이 방향물질을 멀리까지 흩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나아가서 하마의 분뇨는 무기로도 사용된다. 이에 대해 독일의 동물학자 한스-빌헬름 슈몰리크Hans-Wilhelm Smolik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마리의 하마 수컷이 만나면 그 즉시 꼬리 프로펠러가 작동한다. 한 놈이 분뇨크림을 발사할 때마다 다른 놈도 똑같이 응사한다. 이때 두 놈은 누가 더 많이 발사하는지를 정확히 기억한다. 물론 먼저 탄환이 떨어지는 쪽이 진다. 진 놈은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달린 거대한 주둥이를 있는 힘껏 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발정기 때는 분뇨크림 이외에 예외적으로 주먹다짐도 오간다. 하지만 그 밖은 언제나 똥을 더 많이 싸는 쪽이 이긴다. 이것이 적자생존의 생존경쟁과 종족보전을 위해서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물론 수수께끼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상에서-특히 정치와 매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여기서도 자기 주변에 최대한 똥을 많이 싸지르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박규호 옮김, 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 뜨인돌출판사, 2007. p45.

내 글을 좀 써야할텐데. 하하-_-;
2010/02/03 13:02 2010/02/03 13:02

낙관주의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9 15:41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 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 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 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하워드 진 지음,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폴 불 각색, 송민경 옮김, 2008, 다른. 281-284쪽
(아마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마지막 장 '희망의 가능성' 의 발췌)

이전에 한 번 옮겼던 글이지만 다시 옮긴다. 아리기, 크리스 하먼 들도 가고, 그도 떠났다. '이성으로 낙관하더라도 의지로 비관'하는 나에게 이런 낙관주의자들은 부담스럽다. 결정론에 빠져 있는 나의 치부를 자꾸 건드려서 불편하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던 그 혹은 그들에게 각별할 것은 없지만, 한 낙관주의자를 기억하고자 남긴다.

I am totally confident not that the world will get better, but that we should not give up the game before all the cards have been played. The metaphor is deliberate; life is a gamble. Not to play is to foreclose any chance of winning. To play, to act, is to create at least a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
The Optimism of Uncertainty, The NATION.

2010/01/29 15:41 2010/01/29 15:41

深淵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5 23:54
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넌 적이 있다. 지중해의 항해, 낭만적일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동 시간은 길었고, 데크는 추웠으며, 배는 시끄러웠고 3등칸에 해당하는 에어시트는 편히 잘 수도 없었다. 공항에서 노숙한 다음날과 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린 날의 컨디션이 비슷했다. 매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가방의 옷들을 주섬주섬 몸에 두르고 밤새 맥주캔을 쌓다가 웅크리고 잠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스에 도착해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섬에 갔다 나오느라 30시간도 넘게 배에서 보냈다. 결과적으로 3일밤을 배에서 자느라 엄청나게 피곤했고, 배 삯은 저가항공보다 비쌌고, 비가와서 즐겁게 놀지도 못한데다 이후의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스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한달이 넘는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단 하나의 장면을 말하라면 나는 배에서 본 밤의 지중해, 그 심연을 이야기하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러나 내게 바다는 시원한 바람이었고 고깃배의 불빛이 빛나는 곳이었다. 바다는 어느때고 무섭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풍경일 뿐이었다.
긴 밤이었다. 배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애 하나와, 좀 더 나이가 많은 콜롬비아 여자 하나와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다가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갔다. 해 질 무렵 항구를 출발한 배는 수평선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대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담배를 피우는 몇 사람들 뿐 갑판은 조용했다. 난간에 서서 바다를 내다 봤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엔진소리, 몇개의 등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막막했다. 가슴은 먹먹했다. 바라보는 순간 여기서 단 한발을 내밀어 저 안에 들어간다면 절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있었다. 심연이 책 속의 활자가 아닌 내 눈앞에 있었다. 어둡고 깊은 못, 따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심연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심연을 보고 있었다. 울것만 같았다. 갑판에서 떨어진 담뱃불은 물보라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대자연에 압도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거나 떨어질 듯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 뿐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
2010/01/25 23:54 2010/01/25 23:54

spent a lifetime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19 19:45
삶이라는 궁핍한 암흑, 그 구덩이 속에서 목마른 자 누구인가? 그는 그 구덩이에서 도망치는 방법을 찾으려고 평생을 허비했다. Hungry darkness of living who will thirst in the pit? She spent a lifetime deciding how to run from it. Ghetto Defendant, COMBAT ROCK, THE CLASH, 1982.

세상은 돌고 또 돈다.
1980년대 말, 세상은 정말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무너지길 기다리며 매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대개 같은 길을 걸었다. 목적도 없이. 매일 같은 길, 같은 쇼윈도, 같은 얼굴들. 상점의 점원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구경꾼을 바라보듯 쇼윈도 너머의 사람들을 내다봤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밖에 없었다.
포가街, 카스텔로 광장, 로마가, 산 카를로 광장,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 포가. 그리고 다시 카스텔로 광장, 로마가, 산 카를로 광장. 매일, 날마다, 몇 킬로미터씩, 끝도 없이. 한 켤레뿐인 내 신발의 밑창은 금새 다 닳아버렸다. 되도록 신발이 닳지 않게 걸으려고 애썼지만, 그러려면 깡충깡충 뛰는수밖에 없었다. 점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출세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새장에 갇혀 있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 도시가 내게는 새장이었다. 항상 똑같은 그 길들은 내겐 미궁이었다. 붙잡을 실오라기 하나 없는.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주세페 쿨리키아Giuseppe Culicchia, 빗나간 내인생, 이현경 옮김, 낭기열라, 1994(2005). 9쪽.

돌아갈 수 있을까. 문득 겁이 난다.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이 세상에 쓰레기처럼 버리고 가는 상처가 두렵다. 태어난 것 자체를 고민했다. 도시에서 지낸 시간이 추억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만큼은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에 밤마다 몸을 뒤척였다. 이 세상은 공평하다. 약한 자는 퇴장하고 강한 자만 리그에 남는다. 진실과 거짓은 맞바꿔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지만 꿈과 현실을 혼동했다가는 시스템에서 제거당하고 만다. 시스템에세 제거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혼자 남겨지는 것은 공포다.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손에 쥐었을 때 작은 물고기가 손안에서 파닥대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그 물고기를 원래 자리에 놓아주려고 한다. 언어를 잃어버렸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조정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정자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거둬갔다. 아, 조정자가 출구를 막아버렸다. 그 출구를 열어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처음 조정자의 존재를 눈치 챘을 땐 이토록 극심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조정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며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무의미했다.
김주희, 피터팬 죽이기, 민음사, 2004. 252쪽.
2010/01/19 19:45 2010/01/19 19:45

몸살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10 00:50
폭설이었다. 열심히 눈을 치웠고, '눈이 많이 와서 집이 무너진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우리 동네에 하루에 8대 들어오는 버스는 일주일째 산길을 올라오지 못했다. 외제 세단도 마티즈도 함께 줄줄이 길가에 늘어섰다. '백두산도 철조망도 독재자도 식구처럼 나란히 눕히고 싶었지' 곽재구의 호수가 생각났다. 산길을 다니는 차들은 suv와 트럭들 뿐이었다. 과격환경단체가 이 동네에 온다면 굴러다니는 모든 차들을 불 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춥고 나가기도 불편해서 칩거했다. 수도권은 며칠째 영하 두자리수의 날씨를 기록했다. 며칠전에 모처럼 외출했는데 마침 엄훠니가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있어서 새벽 6시에 함께 집을 나섰다. 산길을 지나 큰길에 들어서고,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려서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다른 차들을 보냈다. 큰길이라고 하지만 왕복 2차선. 우리 차가 한 선을 먹었으니 중앙선을 넘어서 차가 다녀야 하기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차를 막고 보내고 했지만, 나는 서툴렀고, 언 길을 불안하게 달리는 차들은 별로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뭐 그래도 다들 조심히 다녀서인지 무사했다. 어머니는 보험회사에 전화했고, 아직 문을 연 카센터가 없어서 한시간쯤 지나서야 버스를 탔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온몸에 근육통이 생겼고 열이나고 심지어 이까지 아팠다. 다행히 기침을 하거나 감기의 증상은 없어서 그냥 좀 자면 나을 것 같지만, 용산에 가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다가 눈앞이 깜깜해지곤 잠시 후 바닥에 누워있는 날 발견하고는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갔다. 나 지금 혼자서 누가 궁금해 하거나 묻거나 시키기도 않은 변명 하고 있는거 맞다. 오늘은 흐렸다. 그리고 눈이 조금 내렸다. 나는 여전히 무력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대설주의보, 최승호, 1982.
2010/01/10 00:50 2010/01/10 00:50
카테고리를 바꾸고 싶었는데 바꿀 수 없었다. 면접을 봤고 우울하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또 하나 기회를 놓쳤다. 주저하기만 하면서 모든것을 흘려버리고 있다. 내 인생 내 뜻대로 살아야지, 철없는 어린애 꿈같은 생각을 했지만, 내 삶에서 내가 가진 지분이 너무 적다는걸 느꼈고, 그 지분조차 가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에 끊임없이 지인들을 만나 술을 먹고, 새해의 소망을 수줍게 노트에 적어본다- 는 전형적인 삶을 살지 못한것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걸 원하는건 아니지만, 그 반대 급부가 이것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리고 조금은 슬프다. 조급함과 두려움은 계속해서 실수를 낳고, 실수는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한해 동안 들었던 나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방어적이고 자신감이 없으며 목표도 없고 준비 된 것도 없음. 물론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나 역시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최후의 날은 지났다. 하지만 나에게 2009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나, 혹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다. 어디에 있는걸까.
2010/01/02 21:21 2010/01/02 21:21

시간의 적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2/16 17:15
작년 3월에 입대했던 동생은 이제 두 달 남짓한 군생활을 그간 쓰지 못한 휴가들로 때우고 있다. 동생이 입대할 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2년. 그래도 2년이면, 나는 아마 동생의 등록금에 보태라고 선심을 쓰거나, 그렇게 거창하진 않아도 새 옷 사입을 용돈 조금은 마련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절의 시간은 언제나 괴롭다. 가능성이 낮은 줄 알았으면서도, 혹은, 이미 결과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확인하는 순간은 미묘하게 두근거린다. 그리고 역시나 실망한다. 잠깐이나마 꿈을 꾼 자신을 비웃는다. 뭘 생각했던거야 도대체. 그 일희일비의 찰나. 한때 친한 후배와 일희일비하지 말 것을 다짐하던 때가 있었다. 힘들어하지 말고 갈 길을 가자는 뜻이었다. 어떻게든 결국은 조금 나아지지 않겠냐는 작은 희망이었다. 그리고 또 한때는 인간이란 일희일비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일희일비하며 사는게 삶이라고, 그렇게라도 생동하고 있음을 느낀다면 다행일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허황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는 내가 싫다.
10년전, 2000년 12월 3일 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사회의 나에 대한 시선은, 내 아버지의 나에 대한 시선과 같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신뢰'라는 것을 받아 보지 못할 것이다. 내 아버지가 나를 신뢰하지 않듯이.' 라고 썼다. 18세. 고등학교를 그만 두고 난 직후의 어느 날. 그리고 28세를 이주일 쯤 앞둔 나는 지금, 저 글을 떠올리며 몸서리친다. 그리고 한 줄을 추가한다. 나 역시도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이렇게 하나도 변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을까. 도대체 나는 어디에서 멈춘걸까. 무엇이 문제인걸까. 나는 뭐가 잘못된걸까.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걸까. 아니, 그럴 수나 있을까.
복리로 불어나는 적자. 이미 신용은 불량.

(...)
신께 묻습니다. 무저항은 죄인가요?
(...)
이젠 내게 행복도 불행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갑니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 이른바 '인간세상'에서 단 하나 진리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단지 모든 것은 스쳐 지나간다.

나는 올해 스물 일곱이 됩니다. 흰머리가 눈에 띄게 늘어 사람들은 40대 이상으로 봅니다.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민음사, 133, 134쪽.
2009/12/16 17:15 2009/12/16 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