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에 해당되는 글 3건

  1. 스물 그리고 서른 (2) 2010/06/29
  2. 사고4 (2) 2010/06/14
  3. 사고3 (2) 2010/06/01

스무 살 땐 설레임, 세상이 예뻤다. 사랑이 쉬웠듯이 약속도 그랬다. 커피와 담배처럼 진하고 또, 독한, 젊은 밤이 지날 땐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벌거벗은 채로 세상을 맞서도 두려움 느낄 수 없었던. 자유롭던 날들, 사랑했던 시간, 그리운 내 모습이여.
서른 살은 기다림, 또 다른 시작을. 약속을 지키듯이 사랑도 그렇다. 녹스는 가슴으로 버텨내는 시간, 견디기 힘들어서
나도 몰래 눈물이 흐를 때. 다시 한 번 여기 세상을 맞서는 날 위해 기도를 해야 해. 아무것도 아닌 세상의 고민들 이제는 버릴 수 있게.
이승열, 스물 그리고 서른, 2007, <In Exchange>

4개월동안 나름대로 즐거웠고,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나를 버티게 하는 하나의 힘이 되어 주었던 강의가 끝났다. 마침 일주일짜리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어서 저녁도 못먹고 강의에 뛰어 들어가, 종강모임도 참석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말에 별 이유없이 열이 올라 터진 입술을 씹으며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부터 몇번이고 되감기 버튼을 누르며 듣고 또 들었다. 열한시 삼십분. 막차. 스무번, 그리고 일곱번, 그리고 또 다시 반쯤, 듣고 나니, '이번 정류장은 신현3리 오포마트입니다. 다음 정류장은 광명초등학교입니다.' 열두시 삼십분. 나도 몰래, 눈물이 흐르진 않았는데, 씹던 입술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내일이면 엄청나게 부어오를텐데. 아 내일 아르바이트에서 팀장이란 양반께 인사를 해야한다던데. 어쩌지.
2010/06/29 01:29 2010/06/29 01:29

사고4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6/14 12:41
이 이야기의 마지막이 폐차장에서 끝나리란 것은 사고가 나고 이틀쯤 뒤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또 이틀쯤 뒤, 수리 가능하겠다는 통보를 받고 기뻐하며, 이제 어차피 팔지도 못할테니 노환으로 자연사 할 때 까지 잘 보살펴 주리라 다짐했다. 그런데 또 이틀쯤 뒤, 도저히 수리 할 수 없다는 연락이 왔고, 폐차장으로 차를 옮기겠다고 했다. 결국 사고가 난지 정확히 일주일만에 군포시의 한 폐차장에서 완전히 분해해서 더욱 참혹한 마티즈를 만나, 기념으로 차의 계기판을 떼오고, 폐차를 위한 서류작업을 했다. 흑 잘가. 계기판은 어쩜 그리 깨끗하던지. 아니, 앞바퀴를 기점으로 그 뒤는 어찌나 멀쩡하던지.
무릎이 아프고 목이 좀 아프고 갈비뼈가 많이 아프고- 다행히 골절은 없다고 하니 한 한달 조심하면 낫지 싶다. 다만 사고며, 늘상 고민하던 일들이며, 최근에 심해진 생활의 변화에 대한 압박, 날씨는 덥고, 돈벌어서 차를 사줘야한다는 부담감, 졸업한지 3년이 된다는 짜증 따위로 좀 힘들다.
2010/06/14 12:41 2010/06/14 12:41

사고3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6/01 01:50
아침부터 서둘러 경찰서에 가서 진술서를 썼다. 살면서 처음 쓰게 될 진술서가 교통사고 경위 진술서일 줄은 몰랐다. 경찰서 사고조사계에 비치된 견본을 보고 쓰는데, 그 시작은 이랬다. '저는 00살로 000에 살며 직업은00입니다.' 무직이라고 쓰려니 당연히도, 기분이 좋지 않았다. '0월0일0시경 본인 외 탑승자0명과 00에서 00으로 향하는 편도0차선 도로 00부근에서 약 00km/h의 속도로 S자 곡선도로를 주행하다....' 사고시점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기에, 그리고 달리 할 말이 없길래 그냥 썼다. '본인의 운전 미숙으로 우측의 전봇대와 사고차량 전면의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사고 당시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으나 복부 충격으로 인한 통증과 당황으로 잠시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이 충돌시 소음을 들은 인근 주민이 119에 신고하여 00시00분경 응급 구조반이 도착하여 00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습니다. ...' 내가 남자였거나, 사고 장소가 좀 다른 곳이었거나 했다면 음주나 또 다른 가능성을 의심 했을 지도 모르지만, 추리닝 차림에, 지갑만 들고 빈손으로, 술냄새도 나지 않고, 집에서 출발한지 10분만에, 골목에서 사고를 낸 사람에게 별 다른 혐의를 찾을수는 없었는지 사고 장소를 뜬 것에 대한 해명은 간단히 마무리 되었다. '...x-ray, 복부ct촬영 등의 검사 결과 큰 문제점을 찾을 수 없기에 통원치료 하기로 하고 귀가하였습니다. 귀가하던 길에 사고지점에서 차량이 없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전화 해 보니 해당 파출소로 연결 해 주었고, 해당 파출소에서 순찰중 견인조치하였고, 관할 경찰서 조사계로 사건이 접수된 것을 안내받았으며 이후 조사계 000경장에게 연락을 받아 이후 조사에 대해 통보 받았습니다.' 로 끝나는 진술서. 당연하겠지만, '저는 앞으로 언제나 전방 주시에 태만하지 않을것이며 안전에 유의하여 운전하겠습니다' 혹은 '이번 사고로 인해 피해를 입은 차주와 인근 주민께 사과드리며, 본인의 치료에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따위의 말을 쓰지 않아도 되어서 참 다행스러웠다.
경찰서 다음엔 병원에 좀 들르고, 별것 아닌 것 같은데도 대략 3-4주간의 진단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고, 보험회사 콜센터 직원, 보험회사 대물 손해 배상 담당자, 보험회사 대인 손해 배상 담당자와 여러차례 전화해서 경위를 설명하고, 병원에 다녀온걸 얘기하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하종강씨였나, 어느 해 수배 도중 검거되어 고문을 당하고 여름이 다 가도록 몸의 멍이 사라지지 않아 반팔을 입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는데, 나도 최소한 몇 일은 반팔을 입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큰 멍들은 몸통에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
의외로 부모님께 별로 혼나지 않았는데, 차가 부서진 것을 보고 너무 놀라신 나머지, 안좋은 상상이라도 많이 하셨는지 다른 차나 사람 안 건드리고 너 크게 안다친걸 감사하라는 말만 계속 하셨다. 물론 뭐 여타 잔소리들도 있었지만, 그야 당연한 걸테고. 하지만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사고에 대한 억울함이 여전히 앞섰고, 그렇지만 내가 그걸 누군가에게 주장하거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으므로 그냥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억지로 밤에 서울에 갔다. 요즘 거의 유일한 삶의 낙인 강좌를 듣고 집에 돌아오는데, 명동 롯데백화점 근처에서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하다가 버스에 치일뻔한 남자애 둘을 봤다. 민망해선지 둘이 장난을 치던건지 아니면 자기가 지금 무슨 상황에서 겨우 벗어났는지를 모르는건지 웃고있는 애들을 보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 역시 인간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이겠지만, 타인을 거기에 끌어들이진 말아야겠지, 따위의 쓸모없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세정거장 지나 중앙극장 앞에서 역시나 무단횡단 하다가 버스 전용차로에서 버스에 치여 피를 많이 흘리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을 보았다.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삼일 전 나도 교통사고로 저 차에 탔었지, 라는 생각과 아스팔트에 흐른 피를 보니 기분이 참 이상해졌다. 어쩌면 난 참 다행이었던 것이겠지. 내가 많이 다치지 않은것도, 남을 다치게 하지 않은 것도. 그런데 남의 불행을 보고서야 자신의 다행을 깨닫는 나는 뭘까, 그런 생각들.
2010/06/01 01:50 2010/06/01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