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1'에 해당되는 글 5건

  1. 낙관주의자 2010/01/29
  2. 深淵 2010/01/25
  3. spent a lifetime 2010/01/19
  4. 몸살 (4) 2010/01/10
  5. 2009최후의 날 (4) 2010/01/02

낙관주의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9 15:41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 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 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 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하워드 진 지음,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폴 불 각색, 송민경 옮김, 2008, 다른. 281-284쪽
(아마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마지막 장 '희망의 가능성' 의 발췌)

이전에 한 번 옮겼던 글이지만 다시 옮긴다. 아리기, 크리스 하먼 들도 가고, 그도 떠났다. '이성으로 낙관하더라도 의지로 비관'하는 나에게 이런 낙관주의자들은 부담스럽다. 결정론에 빠져 있는 나의 치부를 자꾸 건드려서 불편하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던 그 혹은 그들에게 각별할 것은 없지만, 한 낙관주의자를 기억하고자 남긴다.

I am totally confident not that the world will get better, but that we should not give up the game before all the cards have been played. The metaphor is deliberate; life is a gamble. Not to play is to foreclose any chance of winning. To play, to act, is to create at least a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
The Optimism of Uncertainty, The NATION.

2010/01/29 15:41 2010/01/29 15:41

深淵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5 23:54
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넌 적이 있다. 지중해의 항해, 낭만적일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동 시간은 길었고, 데크는 추웠으며, 배는 시끄러웠고 3등칸에 해당하는 에어시트는 편히 잘 수도 없었다. 공항에서 노숙한 다음날과 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린 날의 컨디션이 비슷했다. 매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가방의 옷들을 주섬주섬 몸에 두르고 밤새 맥주캔을 쌓다가 웅크리고 잠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스에 도착해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섬에 갔다 나오느라 30시간도 넘게 배에서 보냈다. 결과적으로 3일밤을 배에서 자느라 엄청나게 피곤했고, 배 삯은 저가항공보다 비쌌고, 비가와서 즐겁게 놀지도 못한데다 이후의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스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한달이 넘는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단 하나의 장면을 말하라면 나는 배에서 본 밤의 지중해, 그 심연을 이야기하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러나 내게 바다는 시원한 바람이었고 고깃배의 불빛이 빛나는 곳이었다. 바다는 어느때고 무섭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풍경일 뿐이었다.
긴 밤이었다. 배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애 하나와, 좀 더 나이가 많은 콜롬비아 여자 하나와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다가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갔다. 해 질 무렵 항구를 출발한 배는 수평선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대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담배를 피우는 몇 사람들 뿐 갑판은 조용했다. 난간에 서서 바다를 내다 봤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엔진소리, 몇개의 등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막막했다. 가슴은 먹먹했다. 바라보는 순간 여기서 단 한발을 내밀어 저 안에 들어간다면 절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있었다. 심연이 책 속의 활자가 아닌 내 눈앞에 있었다. 어둡고 깊은 못, 따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심연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심연을 보고 있었다. 울것만 같았다. 갑판에서 떨어진 담뱃불은 물보라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대자연에 압도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거나 떨어질 듯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 뿐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
2010/01/25 23:54 2010/01/25 23:54

spent a lifetime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19 19:45
삶이라는 궁핍한 암흑, 그 구덩이 속에서 목마른 자 누구인가? 그는 그 구덩이에서 도망치는 방법을 찾으려고 평생을 허비했다. Hungry darkness of living who will thirst in the pit? She spent a lifetime deciding how to run from it. Ghetto Defendant, COMBAT ROCK, THE CLASH, 1982.

세상은 돌고 또 돈다.
1980년대 말, 세상은 정말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 같았다. 나는 세상이 무너지길 기다리며 매일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대개 같은 길을 걸었다. 목적도 없이. 매일 같은 길, 같은 쇼윈도, 같은 얼굴들. 상점의 점원들은 동물원의 동물들이 구경꾼을 바라보듯 쇼윈도 너머의 사람들을 내다봤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자유로웠다. 하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밖에 없었다.
포가街, 카스텔로 광장, 로마가, 산 카를로 광장,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 포가. 그리고 다시 카스텔로 광장, 로마가, 산 카를로 광장. 매일, 날마다, 몇 킬로미터씩, 끝도 없이. 한 켤레뿐인 내 신발의 밑창은 금새 다 닳아버렸다. 되도록 신발이 닳지 않게 걸으려고 애썼지만, 그러려면 깡충깡충 뛰는수밖에 없었다. 점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출세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새장에 갇혀 있기 싫었다. 그렇지만 이 도시가 내게는 새장이었다. 항상 똑같은 그 길들은 내겐 미궁이었다. 붙잡을 실오라기 하나 없는.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주세페 쿨리키아Giuseppe Culicchia, 빗나간 내인생, 이현경 옮김, 낭기열라, 1994(2005). 9쪽.

돌아갈 수 있을까. 문득 겁이 난다.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이 세상에 쓰레기처럼 버리고 가는 상처가 두렵다. 태어난 것 자체를 고민했다. 도시에서 지낸 시간이 추억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슬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만큼은 남들처럼 살고 싶은 욕망에 밤마다 몸을 뒤척였다. 이 세상은 공평하다. 약한 자는 퇴장하고 강한 자만 리그에 남는다. 진실과 거짓은 맞바꿔도 살아가는 데 별 지장이 없지만 꿈과 현실을 혼동했다가는 시스템에서 제거당하고 만다. 시스템에세 제거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혼자 남겨지는 것은 공포다.
꿈이 있었다. 그 꿈을 손에 쥐었을 때 작은 물고기가 손안에서 파닥대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제 그 물고기를 원래 자리에 놓아주려고 한다. 언어를 잃어버렸다.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조정받고 있는 게 분명하다. 조정자는 주변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거둬갔다. 아, 조정자가 출구를 막아버렸다. 그 출구를 열어줄 수 있는 건 오직 사람뿐이다. 처음 조정자의 존재를 눈치 챘을 땐 이토록 극심한 공포를 느끼지 않았다. 조정자의 의도를 짐작해 보며 탈출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무의미했다.
김주희, 피터팬 죽이기, 민음사, 2004. 252쪽.
2010/01/19 19:45 2010/01/19 19:45

몸살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10 00:50
폭설이었다. 열심히 눈을 치웠고, '눈이 많이 와서 집이 무너진다'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봤다. 우리 동네에 하루에 8대 들어오는 버스는 일주일째 산길을 올라오지 못했다. 외제 세단도 마티즈도 함께 줄줄이 길가에 늘어섰다. '백두산도 철조망도 독재자도 식구처럼 나란히 눕히고 싶었지' 곽재구의 호수가 생각났다. 산길을 다니는 차들은 suv와 트럭들 뿐이었다. 과격환경단체가 이 동네에 온다면 굴러다니는 모든 차들을 불 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춥고 나가기도 불편해서 칩거했다. 수도권은 며칠째 영하 두자리수의 날씨를 기록했다. 며칠전에 모처럼 외출했는데 마침 엄훠니가 아침 일찍 나갈 일이 있어서 새벽 6시에 함께 집을 나섰다. 산길을 지나 큰길에 들어서고, 차의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려서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다른 차들을 보냈다. 큰길이라고 하지만 왕복 2차선. 우리 차가 한 선을 먹었으니 중앙선을 넘어서 차가 다녀야 하기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차를 막고 보내고 했지만, 나는 서툴렀고, 언 길을 불안하게 달리는 차들은 별로 내 말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뭐 그래도 다들 조심히 다녀서인지 무사했다. 어머니는 보험회사에 전화했고, 아직 문을 연 카센터가 없어서 한시간쯤 지나서야 버스를 탔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온몸에 근육통이 생겼고 열이나고 심지어 이까지 아팠다. 다행히 기침을 하거나 감기의 증상은 없어서 그냥 좀 자면 나을 것 같지만, 용산에 가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다가 눈앞이 깜깜해지곤 잠시 후 바닥에 누워있는 날 발견하고는 다시 이불 속에 들어갔다. 나 지금 혼자서 누가 궁금해 하거나 묻거나 시키기도 않은 변명 하고 있는거 맞다. 오늘은 흐렸다. 그리고 눈이 조금 내렸다. 나는 여전히 무력하다.

해일처럼 굽이치던 백색의 산들,
제설차 한 대 올 리 없는
깊은 백색의 골짜기를 메우며
굵은 눈발은 휘몰아치고,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굴뚝새가 눈보라 속으로 날아간다.

길 잃은 등산객들 있을 듯
외딴 두메마을 길 끊어 놓을 듯
은하수가 펑펑 쏟아져 날아오듯 덤벼드는 눈,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쪼그마한 숯덩이만한 게 짧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온다 꺼칠한 굴뚝새가
서둘러 뒷간에 몸을 감춘다.
그 어디에 부리부리한 솔개라도 도사리고 있다는 것일까.

길 잃고 굶주리는 산짐승들 있을 듯
눈더미의 무게로 소나무 가지들이 부러질 듯
 
다투어 몰려오는 힘찬 눈보라의 군단,
때죽나무와 때 끓이는 외딴 집 굴뚝에
해일처럼 굽이치는 백색의 산과 골짜기에
눈보라가 내리는 백색의 계엄령.

대설주의보, 최승호, 1982.
2010/01/10 00:50 2010/01/10 00:50
카테고리를 바꾸고 싶었는데 바꿀 수 없었다. 면접을 봤고 우울하고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또 하나 기회를 놓쳤다. 주저하기만 하면서 모든것을 흘려버리고 있다. 내 인생 내 뜻대로 살아야지, 철없는 어린애 꿈같은 생각을 했지만, 내 삶에서 내가 가진 지분이 너무 적다는걸 느꼈고, 그 지분조차 가치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연말에 끊임없이 지인들을 만나 술을 먹고, 새해의 소망을 수줍게 노트에 적어본다- 는 전형적인 삶을 살지 못한것이 얼마인지 모르겠다. 그걸 원하는건 아니지만, 그 반대 급부가 이것이라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고, 그리고 조금은 슬프다. 조급함과 두려움은 계속해서 실수를 낳고, 실수는 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는다. 한해 동안 들었던 나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방어적이고 자신감이 없으며 목표도 없고 준비 된 것도 없음. 물론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문제는, 나 역시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최후의 날은 지났다. 하지만 나에게 2009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거나, 혹은 아직 다가오지도 않았다. 어디에 있는걸까.
2010/01/02 21:21 2010/01/02 2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