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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욕망 2009/10/30
  2. 도서관, 일상. (6) 2009/10/26
  3. 치사한 마케팅 (6) 2009/10/16
  4. 나쁜 버릇 (4) 2009/10/14
  5. 퀴즈쇼 2009/10/10
  6. 제가 집이 좀 살아서 (4) 2009/10/09

욕망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0/30 23:55
그냥 또 책을 읽다가 생각을 해봤는데. 내가 하고싶은 무엇인가는 과연 있는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왜 해야하는 건지, 하고싶은 건지, 생각 해 보면 정말 알수가 없다. 사춘기적에나 하던 소리 아니냐고. 맞다. 그런데 당신은 아나? 정말로 아는 사람이 있긴 한걸까. 사람들은 도대체 몇 살때 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 혹은 답을 찾게 되는것일까. 난 그냥 적당히 내 능력에 대한 환상을 충족하면서, 적당히 인정도 받고싶고, 적당히 고생하지 않고, 적당히 내 양심도 위로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있는 것 뿐이지 않을까. 아이는 엄마의 욕망을 욕망한다. 아이의 욕망은 잊어버렸다. 아니, 잃어버렸다. 언제인지 혹은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없어졌다. 처음부터 없었던 걸지도 모르지만. 그럼 모든 건 결정되어 있는걸까. 아무것도 내가 선택 할 수는 없는걸까. 나의 선택이 아니라면 그냥 하지 않으면 안되는걸까. 강요된 욕망을 나의 선택이라고 믿고, 또 믿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일까. 사람이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수는 없는걸까. 없겠지. 없겠지만, 그래도 싫은건 싫은거라고. 이 모든건 내 책임이 아니야. 난 그냥 태어난 것 뿐이라고. 유실물 센터라도 찾아 주던가, 날 無로 돌려주던가, 아니면 내가 나를 사보타주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아, 난 누구 여긴 어디 지금 뭐하는 중이지.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책을 보지만 눈에 들어 올 리가 없다. 장기 20세기가 지속되고 순환하고 어쩌고. 괜찮아. 책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이번엔 사춘기에 어울리는 청소년으로 가보자고.
이것 참, 괜찮은 현실 도피인데.
2009/10/30 23:55 2009/10/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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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필요와, 사회적응재활훈련의 일환으로 한동안 오전에 영어학원을 다녔고, 옆동네 S시의 공공도서관 성인 열람실에도 몇 번 다녔으며, 최근에는 영어공부고 뭐고 귀찮다 책이나 읽으련다- 하고는 어디에서도 책을 대출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는 사정(내가 사는 K시의 공공도서관은 버스를 3번 갈아타고 2시간 정도...) 탓에 공공도서관 자료실을 이용하고 있다. 하루 최소 10여알의 약들에 힘입어 그럭저럭-물론 기복이 있지만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는 서초동(정확히는 반포)의 국립중앙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는데, 어차피 대출 할 수 있는 도서관이 없는지라, 자료도 많고, 시설도 좋고, 심심하면 컴퓨터도 적당히 쓸 수 있고, 이동시간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서 즐겁게 이용하고 있다. 대출 받지 못하는건 불편하지만, 도서관에서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한편 적당히 긴장감을 유지해 줘서 효율이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소장자료 열람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저런 광경을 보지 않아도, 저런 광경에 동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적이 마음에 위안이 된다. -에 물론, 많은 사람들이 연습장이나 프린트물 등을 들고 들어와서 공부를 하고, 도서관에 비치된 수험서 류를 펴고 앉아있는게 사실이지만.

아침에 샌드위치를 넣은 도시락을 챙겨서 하루에 8대 다니는 마을버스 시간을 맞추어 나간 뒤, 강남역이나 남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탄다. 각각 내려서 국립중앙도서관까지는 약 2km정도로 비슷한 거리. 갈아타는 버스도 있지만 운동삼아, 돈도 아끼고, 걸어가려고 하는 편인데, 천천히 30분 정도 걸리고, 밤에는 배가 고파서-_- 버스타고 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예술의전당-남부터미널-교대역-서초역-도서관 혹은, 강남역-교대-대법원 건물 통과-도서관의 루트를 따르는데, 강남역 쪽이 상대적으로 버스에 자리도 많고, 걷는 거리도 약간 짧기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다. 남부터미널은 대신 버스가 자주 다니고. 도착하면 10시 정도. 책을 고르고 자리를 잡은뒤 나가서 도시락을 먹고, 책을 보다가, 오후가 되어 심심하면 컴퓨터도 좀 쓰다가(3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3-4시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밥을 사먹고, 오전에 고른 책을 다 읽었다면 저녁까지 읽을 책을 좀 더 고른 뒤(대출은 6시까지만 가능), 야간10시까지 이용할 수 있는 1층에 미리 자리를 잡아 둔다. 의외로 자리가 없어서 사람들이 구석구석 앉아서 책을 읽곤 하는데, 둘러보면 책상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반정도가 하루종일 앉아서 수험서 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는 적당히 저녁쯤까지 책을 읽다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좀 놀다가 잠을 자는 하루. 누가 나에게 매일 하루에 만원씩만 준다면, 그걸로 오천원어치 차비 하고 삼천오백원짜리 식당 밥 사먹고 풍족하게 지낼 수 있을텐데. 책은 나를 거부하거나 사람을 고르거나 하지 않는다. 패자에게 적당한 핑계거리, 백수로서 알맞은 소일거리다.

대법원을 지나갈때면 정말 많은,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사연들을 보게 된다. 판자에 백지를 붙여 그 위에 매직으로 구구절절 적어놓은 억울함을 보는가 하면, 돈 주고 만들어서 돈 주고 붙이라고 시켰을 것이 분명한, 4개를 1열로 붙이다가 하나를 실수로 위아래를 뒤집어 붙여놓은 플랜카드도 보인다. 법원과 검찰청 사이에는 요즘 황우석씨를 변호하는 플랜카드를 바닥에 늘어놓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나마 관리하는 사람들이 한두명씩 상주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줄기교도의 힘은 대단하구나 생각한다.

그걸 보면서 생각한다. PD수첩이 황우석씨에 대한 보도를 하기 직전, 그리고 논란이 일어나던 과정에서, 당시 내 주변의, 소위 민족주의적 좌파(스스로 좌파임을 거부하거나, 혹은 그들과 같은 좌파임을 반대하는 경우도 있겠고, '신자유주의 좌파'와 비슷한 조합일 지 모르겠지만 시장경제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일단 좌파라고 쓰고싶다 나는. 관련어로는 계급론적 좌파라는 단어를 쓰고싶다. 뭐 내 의견일 뿐이다. 진보와 보수, 진보와 개혁 사이의 미묘한 함정이 싫어서 그렇다.) 학생운동을 하던 친구들은,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그의 말에 대체로 황씨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물론, 뭐 어떤 진지한 토론을 하거나, 입장을 발표한 건 아니었고, 그랬더라면 좀 더 신중하게 말했겠지만, '조국'이라는 한마디에 황씨를 믿었던, 아니 어쩌면 믿고 싶었을, '순진하다고 할 지 단순하다고 할 지' 판단하기 어려운 친구들을 기억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유의미한 일일지 또 한번 회의하게 된다.

그림은 최호철, 도서관, 뉴스메이커, 2004. <을지로 순환선>의 그림이 생각나서 옮겼는데 색이 많이 다른 것 같다.
2009/10/26 22:16 2009/10/26 22:16
추석에 큰댁에 갔는데, 원래 아버지 삼형제만 모이는 터라 많지 않은 수에, 동생은 군대가고 사촌동생은 입시공부로, 사촌오빠는 출장으로, 어머니는 출근으로 빠지다 보니 참 썰렁한 모임이 되었다. 아침식사후 어른들은 동양화감상에, 나는 혼자 앉아 TV채널을 돌리다가, 졸리고 지루해서 큰아버지가 쓰시던 서재에 들어 가 보았다. 컴퓨터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출장간 사촌오빠의 암호를 맞출 재간이 없었고, 책장을 둘러보다 김정현의 '아버지' 가 있어서 뽑아 읽어보았다.
이삼십대 중 이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독서에 정말 심각하게 관심이 없거나, 의식적으로 완고하게 피한 사람이다. 아니면 외국에 살았거나, 책을 읽기가 힘든 장애가 있거나. 1996년 초판 발행. 표지만 4번을 바꾸었고 양장본도 나왔으며 심지어 어린이용 만화로도 출간되었다. 나 역시 중학생때 쯤 이 책을 읽었고, 숙제로 독서감상문까지 썼었다. 그 때도 짜증이 났었는데, 너무 심심해서, 그리고 읽은지 십년이 넘었으니 한 번 보면 좀 새롭지 않으려나 읽어보았다.
암 말기의 아버지, 가정에서 소외된 월급쟁이 가장에 대한 신파조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시 읽고는 좀 놀랐다. 이런 책을 어떻게 청소년 추천도서에 넣었는지 신기했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부모는 섹스리스커플, 중년의 권태기, 갑작스런 암선고, 서로 대화하지 않는 식구, 혼외성관계를 통한 위안, 아무도 서로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식구들의 어설픈 화해, 그리고, 적극적 안락사라고 보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는 본인의 촉탁에 의한 살인.
남성이든 여성이든, 아이든 어른이든 가장이 식구들에게 외면받는 경우는 흔하다. 가장 바쁘기 때문이다. 가장 공유할 시간이 적기 때문이다. 구성원들이 이를 배려 해 주고 더구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가장에게서 대화의 부재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다. 가장의 의무에는 생계유지 뿐 아니라 대화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구성원들과 마찬가지로. 주부도 아이들 학교 보내고 나면 하루종일 가사에 지치고 외롭다. 아이들도 요즘엔 성인들의 노동시간보다 더 오래 공부하고, 자라면 자랄수록 부모에 의지할 수 없는 일들이 늘어만 간다. 가장이 가장 많은 재화를 창출해내는 것은 사실이지만 관계에 일방의 책임이란 없다.
정수씨네는 더 특별한 경우였다. 부모간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고, 첫째와 어머니와의 관계에도 문제가 있었다. 부모는 정신적으로도 성적으로도 전혀 교감하지 않았다. 아이들 앞에서는 드러내지 않았다는 변명은 구차하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섬세하고 예민하고 영민한 생물들이다. 그 속에서 첫째는 성인(무려 명문대생)임에도 어머니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 관계를 끊지 못한다. 첫째가 보기엔 아버지와 어머니는 대화도 하지 않고, 어머니가 쓸쓸해 보이고, 아버지는 차갑고, 어머니와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건 외면당하는 아버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거 오히려 아버지들의 피해의식을 자극하고 가족 구성원 간의 벽을 높일 뿐 아무런 문제도 해결 해 주지 않는다.
아버지가 불쌍하니까 우리가 이해하자, 그게 문제가 아니라 이런 가족에서 살아온, 자라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타인과 정서적 교감을 이루기 어렵다는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집단적 발달장애인거지. 그걸 극복하고 연습하고 또 실패하고 그런게 가족이지 죄책감으로 덮어버린 관계가 가족은 아니다. 게다가 20년 넘게 쌓여온 감정이, 가족여행따위로 해결이 될 리가 없다. 혼외성관계야 내가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문제니까. 하지만 그게 해답이라면 그남자 참 안됐다고는 생각한다. 애정 없는 아내에게서 이혼하고 더 좋은 상대를 찾아 떠나지 못했던 그 무거운 가족이라는 관계와 짐에 대해서 위로한다. 그리고 식구들의 죄책감인지 책임감인지 알 수 없는 응원을 받으며 입원한 정수씨는 말기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친구에게 죽음을 청탁한다는 내용.
그런데 왜 팔렸을까. 왜 청소년 권장 도서가 되었을까. 어차피 소비는 만들어진다. 이 책은 팔려야만 했다. 힘든 아버지상을 보여줘야만 했다. 무책임한 책임 전가를 위해서. 90년대 말, 사회는 더이상 가장을, 아버지들을 책임져 주지 못했고, 그 사람들 불쌍하니까 집에서 좀 잘 돌봐주라고 내버린 것 뿐이다. 거기에 극적인 상황을 첨가하니 이건 숫제 협박이다. '가족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희생하는 아버지, 지금 당장 아버지를 따스하게 안아드리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거에요.'
사회에서 책임지지 못하는, 혹은 책임지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을 개인 또는 가족이라는 집단에 부과하는 것은 치사하다. 왜냐하면 그 경우 그 사람의 인생은 전적으로 운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 집안에서 태어 날 것인가 하는. 국가는 개인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충성을 요구했다. 90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의 권력은 자본에게 넘어갔고, 자본은 충성 뿐 아니라 구매까지 요구한다.
90년대는 건강하지 않은 가족의 모습을 외면하고 '아버지 신드롬'을 팔았다. 십몇년이 흘러도 달라진 건 없다. 심지어 피곤한 노동자에게 기업은 휴식과 보상이 아니라 아이를 앞세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들려준다. 자매품으로 요즘 잘 팔리는 상품은 '주입식 교육에 지친 우리 아이'를 내세운 학습법이 있다. 그 제품은 아이들이 자라면 '아이의 대학은 아버지의 경제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을 표방하는 '입시교육'으로 보상판매를 해 주기도 한다.
내가 좀 심한가? 그러면 뭐... 그렇다 치자.

2009/10/16 16:01 2009/10/16 16:01

나쁜 버릇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0/14 01:03
흔한 나쁜 버릇, 턱 괴기 손톱 물어뜯기 다리 떨기. 나는 턱을 괴고 자세가 나쁘고 뭐 그냥 대체로 버릇이 나쁘(이 버릇이 그 버릇은 아니다)긴 하지만 손톱을 물어뜯는 등의 다소 강박적인 나쁜 버릇은 없다. 없었다. 최근 1년 사이,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버릇이 생겼다. 원형탈모로 오인할 만큼 머리카락을 쥐어뜯고서야 내게 그런 버릇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참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애도 아니고, 좀, 부끄럽다.
애도아니고, 부끄럽다고 하니 버릇...은 아니지만 어릴적이 생각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야뇨증이 있었다. 마지막 기억이 12살때니, 국민학교 졸업하기 직전까지 그랬을거다. 엄마와 병원도 다녀봤고 그랬지만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있는것은 아니었다. 그게 다행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건 정말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나는 매일 아침 죄의식을 가져야만 했다. 쉽게 짐작하겠지만, 자신감, 혹은 자존감이 떨어지는 아이였고, 그런것이 증상의 한가지 요인이었을테고, 반면 그런 증상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악순환이었다. 아버지 조차도(...) 내가 스무살이 넘어서까지 놀림감으로 삼곤 했고. 우울한 어린이는 자라서 우울한 어른이 되었다. 여섯살에 유치원을 다닐때에는 출석 부를때 외에는 아무와도 단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 기억에도 그렇다. 심지어 화장실가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으니까. 유치원의 구조는 기억나지만 소풍을 간 장소도 기억하지만 친구는 한명도 없었으니까. 약 8개월동안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천식으로 유치원을 중도하차했다. 그게 내 첫 사회생활이었다. 그런식이었다. 증상이 나아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아닌척 하는 법을 배웠다. 하지만 국민학교 3-4학년 쯤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무려 학급의 임원 같은것을 하고 있었다. 난 애써 물을 엎지른 척 상황을 꾸몄고, 들키지 않았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을테니까. 설마 그랬으라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리고 또 언젠가, 국민학교 5학년, 전후사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업시간에 그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직도 밤에 지도를 그리는 친구는 없겠지?' 뭐 그런 선생님의 이야기에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15년이 지난 오늘도 나는 그 날 웃고있던 내가 앉았던 자리를 기억한다. 어쩌면 그게 나의 가장 나쁜 버릇인지도 모른다. 웃는 척 하는 것. 혹은 아닌 척 웃는 것. 지우지도 못할 일을 태연한 척 담아두는 것.
2009/10/14 01:03 2009/10/14 01:03

퀴즈쇼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10/10 08:45
말이나온김에 몇마디 더.

알다시피 티비를 거의 보지 않지만, 식사시간에 늘어놓은 티비는 듣게된다. 퀴즈프로그램은 재미도 있고, 아무래도 가족과의 아니 자녀와의 식탁에서 적당히 교육적이기도 하다는 이유로 부모들이 선호하는 식사시간 티비프로그램이 아닌가 싶다. 헌데 어릴적, 식사시간 퀴즈프로그램은 늘 나를 불편하게 했다. 퀴즈쇼를 보면서 함께 문제를 푸는 건 참 재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출연자가 당신이 아는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아니 왜 저런 걸 몰라! 저렇게 쉬운걸! 답은 **인데 **!'을 외치곤 하셨다. 그게 참 듣기 싫었다. 하지만 퀴즈쇼의 문제를 모두 다 맞춘다면 아버지가 지금 식탁에 앉아 답을 외치고 있어서는 안되는 일. 모르는 문제가 나오게 되면 묵묵히 멈추었던 식사를 계속하셨다.

산다는게 그런거지만, 아무리 친해도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가족이라도, 퀴즈를 대신 풀어주거나 할 수 없는것이지만, 최소한 전화연결 찬스를 기다리는 친구나, 유치한 현수막이라도 흔드는 방청객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을까. 집에서 식탁 앞에 앉은 시청자가, '아니 저 쉬운걸 왜 몰라' 라고 말할 순 없는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게 예의가 아닐까 하고. 그나마 그건 들리지나 않지. 하물며.

나의 좋은 친구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퀴즈를 풀었는지, 왜 못풀었는지, 답은**인데 몰랐는지 물어보지 않는다. 그냥 피곤하지 않냐, 재미있었냐, 어땠냐, 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2009/10/10 08:45 2009/10/10 08:45
어쨌거나 지인들의 염려하는 마음은 알지만, 일이년에 한 번 어디 결혼식에서나 만나는 사람들이 볼때마다 하는 취직은 했냐, 너 그래서 어쩔거냐, 니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 등등의 질문은 지나치게 느껴진다. 내 입장에서 대답하기 편할 리 없고, 정말 내가 이야기 하고싶다면 먼저 상담할텐데, 편한 사람이라면 묻지 않아도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하게 될텐데, 그저 궁금증을 위해 대답 해 주기엔, 내가 너무 지친다. 이미 수십번은 들은 뻔한 취업과 인생의 설계에 대한 이야기를 웃으며 고개 끄덕이며 듣기엔, 내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져서 싫다.

열흘 쯤 후에 또 결혼식에 가게 될 텐데, 누가 이번에 물으면 '제가 집이 좀 살아서 돈을 안벌어도 되겠더라구요' 라고 대답 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게 이렇게 눙치고 들어갈 넉살이 있었다면, 이런 걱정을 하지도 않겠지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세시간 쯤 한장도 넘기지 않은 외국어 책 위에 턱을 괴고 앉아서, 이런 잡생각들이 현실도피가 아니라, '공부한다' '무엇을 준비한다'는 게 참으로 그럴싸한 현실도피가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뭘 하고 있는건지도 잘 모른채 그냥 책을 펼치고 앉아서, 하루하루를 유예하고 있다는.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았으니, 내가 공부를 못하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억지로 책장을 넘겼다.
2009/10/09 23:23 2009/10/09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