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에 해당되는 글 4건

  1. 시간은 어떻게 가는지 (8) 2009/09/22
  2. 외판원 (4) 2009/09/21
  3. 상관 없어 (4) 2009/09/08
  4. 가난 (2) 2009/09/01
"(...) 봄빛이 짙어지면 이슬이 무거워지는구나. 그렇구나. 이슬이 무거워 난초 이파리 지그시 고개를 수그리는구나. 누구도 그걸 막을 사람은 없구나. 삶이란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어른들은 돌아가시고 아이들은 자라는구나.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온 곳을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이로구나. 울어도 좋고, 서러워해도 좋지만,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해서는 안되는 게 삶이로구나."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마음산책, 242쪽.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그나마 연락을 정기적으로 유지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나보다 연상인 것은, 아마 내가 애라서 그럴것이다. 선배 노릇, 누나 노릇, 그런것이 싫어서. 배려 받고 돌보아 주길 바랄 뿐인 치졸하고 덜 자란 애라서. 종종 만나는 극소수의 후배들은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들이고.
나이를 먹긴 먹었는지, 자주 연락하던 선배들이 올해 대거 결혼을 했거나 한다. 그리고 결혼식에서나 가끔 만나는 사람들은 이제 나를 보면, '결혼할거냐' 도 아닌, '넌 언제 하냐'는 질문을 한다. 아니 난 한다고 한적도 없거든요. -_-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고, 그럴 여유가 없지만, 만나는 양반이 혼인관계를 통한 종족 번식 및 확대 재생산에 강한 의지가 있는지라, 뭐 전혀 외면하지는 못하는 주제이긴 하다.

스무살에 만난 선배들은 이제 서른 즈음이 되어 결혼을 하고, 스물다섯에 졸업한지도 2년이나 지났고, 친구와 후배들은 전화를 걸어 카드와 금융상품을 팔지만, 난 아직 축의금을 낼 능력도, 저축을 할 여유도 없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할때 쓸쓸 해 지는 것은, 스무살 무렵이 멀어졌기 때문인지, 결혼식장에서 봉투에 이름을 쓰거나 흔쾌히 카드를 만들 여력이 없기 때문인지, 혹은, 결혼이나 주택청약저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된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나는 지금 '시간은 어떻게 가는지. 기억은 내 곁에 남아서. 학교 앞 단골집에 모여 친구들 소식을 물으며' 지내는지,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쓸쓸해진다. 그래서는 안되는 게 삶이더라도. 그럴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니까.
2009/09/22 23:35 2009/09/22 23:35

외판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9/21 21:04

학생시절, 그리고 지금도, 항상 저를 괴롭히는 문제는, 저는 회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것이 정말 옳은 것인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합니다. 그것이 항상 저의 행동을 막고, 사고의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해 고민하지만, 사람이 변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사회의 진보를 꿈꾸지만 나 자신이 성장할 것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회란 개인의 집합으로 치환할 수 없고, 구조는 행위의 총체로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가, 사람이, 그래서 결국은 사회와 세상이 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한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또 오랫동안 고민하였습니다. 지금의 제 결론은, 낙관은 낙관주의자의 몫으로 남기자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회의와 연민, 사회에 대한 신뢰와 냉소, 나 자신에 대한 애정과 혐오. 그것이 교차하는 어느 지점에 제가 찾는 그 무엇이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제 몫의 회의, 연민, 신뢰, 냉소, 애정, 혐오, 그것들을 반복하며 살아 갈 것입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들 보다 느릴 것입니다. 제가 주저하고 생각하는 동안 그들은 제 곁을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흘린 것들을 주워 담고, 그들의 달려가는 모습까지도 제 이야기로 만들겠습니다. 신뢰하지 못하기에 더욱 성실하게 회의할 것. 그것이 제가 20대 후반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폭 수정하여 들어간 부분. 이 쯤 하면 나도 제법 그럴싸하게 장사를 하게 된게 아닐까, 했는데 여전히 나는 팔리지 않았다. -_-

2009/09/21 21:04 2009/09/21 21:04

상관 없어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9/08 23:15
최근에 오랫만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쓰기를 해보았다. 우연히 발견한 구인공고에, 별다른 제한이 없기에 써 본 것이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아무튼. 쓰고보니 아주 편지를 써놨더라. 그렇지만 만족한다. 처음 자기소개서 쓰기를 시작했을때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몰랐다. 그들이 듣고싶어 하는 말을 써야할 것 같은데, 난 그들이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내가 봐도 '넌 누구 거긴 어디' 라고 생각할 만한 자기소개서를 몇 장 쓰고나서, 난 자기소개서가 필요한 일자리를 한동안 기웃거리지 않았다. 이력서 한 장으로 해결할 만한 곳에 몇 번. 그리고 또 오랜 시간이 흘렀고. 나는 이제 편지를 쓴다. 제가연, 좀 찌질하고 그렇긴 한데 그렇게 나쁜놈은 아니거든여, 쫌 봐주셈. 굽신굽신.
결국에 중요한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듣고싶어 하는 것은 아마 나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다. 아니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직 무소속 실업자인가보다. -_-
2009/09/08 23:15 2009/09/08 23:15

가난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9/01 23:46
TV를 보지 않은지 10년이 훨씬 넘었다. 이제는 쇼프로그램이나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웃어야 하는건지 알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최근에 몇몇 가까운 지인들의 영향으로, 미국 드라마를 좀(어쩌면 많이-_-) 다운받아 보고, 함께(반강제로-_-) 쇼프로그램을 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다.
씻고 자려고 하다가 휴가나온 동생과 아버지가 틀어놓은 TV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아이돌(이었던) 그룹 가수들이 이전의, '못먹고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과자를 아껴먹는 이야기. 라면이 떨어졌던 이야기. 그러고 보면 종종, '힘들었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 가수나 연예인들의 모습을 보곤 한다.
나는 이럴때 조금 혼란스럽다. 최소한 '있는 척'이나, 자신의 '가진것'을 자랑하는 것 보다 '없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것이 더 인간적으로, 혹은 덜 재수없게 느껴지는 사실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군생활 고생담을 늘어놓는 예비역처럼, '없던 시절'을 이야기 하는 '성공한 아이돌'이 있을 뿐인 TV속 세상에 대해서 비웃어야 하는 건지.
성공은 미화된다. 그러나 가난은 여전히 무시당한다. 가난한 자신을 말하는 사람들은 없으니까. 가난한 현재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은 없으니까. 과거에 가난했고, 지금도 가난한 현실은 방송되지 않으니까. 여전히 가난은 소외된다.

2009/09/01 23:46 2009/09/01 2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