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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에겐 희망이 없다 (10) 2009/07/28
얼마전 충대신문에 실려 이미 많은 논쟁이 되었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글을 읽고 저 역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리하지 못한 생각들이 떠도는 사이, "분노 못 느끼는 20대"에 대한 글을 쓰신것을 보고 저도 조금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0대 입니다. 백수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만 2년째 놀고 있습니다. 근근히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고, 부모님께 돈을 받진 않지만 부모님 집에 얹혀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학점도, 영어성적도 별로인, 루저입니다. 학생시절 집회도 나가봤고, 학생회 활동도 해봤고, 놀아도 봤습니다. 88만원세대, 대학생, 이기적, 무관심, 무책임, 무기력, 무능, 노예근성, 침묵, 토익, 취업, 실업, 백수, 공무원, 고시, 도서관, 술, pc방, 연애, 아르바이트, 파편화, 개인주의, 따위의 단어들로 설명되고 있는, 문제 많은 20대입니다.

20대의 문제들은 그 누구보다 제가, 그리고 20대가 실감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해도 사람 구실 못하며 사는 형편과, 하루에도 몇번씩 취업사이트를 들락이고, 온갖 경력을 장식할 궁리를 하고, 아르바이트로 토익책을 사고, 부모님께 손을 벌려 영어학원에 등록하고, 신림동 고시촌의 숨막히는 적막과, 도서관에 펼쳐진 자격증 수험서들과, 최저임금도 못 받는 아르바이트에서 짤릴까 전전긍긍하며 아무말 못하는 '노예근성과', 대기업, 교사, 공무원 따위를 목표로 대학 4년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바른 삶이 아니라는 것을, 이게 우리의 꿈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그리고 절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드는'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일까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성적표 이외의 공부를 하지 못하는, 세상과 이웃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런 20대가 바로 문제라는 것은 압니다. 저도 그 점이 정말 답답하고 안타깝습니다. 저 역시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이 화가납니다. 하지만 지금, 전 핑계를 좀 대고싶습니다. 20대가 나서지 못해 문제다, 고 말하는 선생님, 그리고 선생님들께 화살을 좀 돌려보고 싶습니다.
물론 20대는 성인입니다. 성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고, 그렇기에 지금 20대가 하는 모든 행동들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행복하지 못한 삶과, 사회적 무력감, 공공의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왜 20대는 이렇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것은 아닙니다. 20대가 못 배우고 모자란 아이들인건 맞는데, 그들을 못 가르친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일이 있었기에, 성인이 되자마자, 청소년에서 청년이 되자마자, 이렇게 '반동적'이고 '무기력'한건지, 그것을 물어보아야 합니다.

다들 이야기하다시피, 20대는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 속에서 유년을 보내고, 사춘기에 IMF를 맞았습니다. 그래서, '취업'에 매달리고 '점수'에 목숨을 거는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IMF를 맞았기에,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건가요? 그래서, 체념해야 되는건가요? 저는 이미 모두가 486이 되어버린 옛 386들, 우리의 바로 윗 선배들인 70년대생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삼촌들, 모두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IMF를 겪으며 우리가 보고 들은것은, 실직하는 아버지와 경제적 위기감, 생존경쟁의 치열함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사실을 아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83년생이고 90년에 국민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이해찬씨가 교육부 장관이 되었고, 저는 소위 '이해찬 1세대'입니다. 이해찬씨의 교육정책은 '하나만 잘 하면 대학 간다'는 것이었죠. 성적 이외에 다른것으로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교실에서 선생님들은, 성적 뿐 아니라 다른것까지 잘 해야한다, 경쟁 상대가 늘어난 것 뿐이다, 라고 우리를 채찍질했고, 학원에서 강사들은, '단군이래 최저학력'이라며 우리들의 무식함을 질책하였습니다. 뉴스에선 대학입시 이후엔 취업입시가 지속된다고 우리를 협박했죠.
대학 이야기를 꼭 해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20대 문제'의 중심에 '대학생'이 있습니다. 대학 재학중이 아니거나 대학졸업자가 아닌 20대의 이야기는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결국 20대의 세상에는, '대학생' '대학을 졸업한 사람' '대학을 못간사람' 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98년 이후 대학진학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반면에 전문대학 진학률은 하락했죠. 이게 말이 되는 현상인가요? IMF외환위기로, 가정경제가 어려워지고, 대학을 다니던 학생들도 휴학을 해야하는 판국에, 어떻게 대학 진학률이 늘어날수가 있는거죠? 경제적인 능력이 급선무인 시기에, 전문적인 직업과 기술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 진학률이 왜 감소하는거죠? 그 조차도, '편입률 1위'를 광고하는건 어째서죠? 이런걸,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로 설명하는 것인가요?
아니 애초에, 하나를 잘 하는 아이가 왜 대학에 가야되는겁니까? 그 아이의 '특기와 적성'을 살릴 수 있는 곳은 오직 대학 뿐인가요? 현재 고교 졸업생의 약 80%가 대학에 진학한답니다. 고등교육이 우리에게 그렇게 필요한 것입니까? 자신이 가진 '특기와 적성'이 고등교육을 필요로 한다면 대학에 진학하면 되죠. 하지만 그것이 필요치 않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에서 직접 실무를 배우고 경험을 쌓고, 그러다가 필요하다면 더 공부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도, 되는것 아닌가요? 아니, 그래야만 하는것 아닌가요? 중등교육을 마치면 당연히, 사회의 일원으로써 대접받고 한 몫을 할 수 있어야 하는것이, 왜 우리에겐 이상한 이야기로 들리는 것이죠?
선생님들은 우릴 상대로, 장사를 했던겁니다. 사회적 위기라는 공포를 앞세워, 무한 경쟁이라는 위기를 모토로, 우리에게 장사를 했던거에요. 너희 지금 보이지? 늬 아버지 명퇴당하고 퇴직금빼서 통닭장사하다가 망해서 돈 다 날린거 알지? 옆집 오빠 명문대 나와서 대기업 갔다고 좋아하더니 지금 정리해고 된거 알지? 사촌 누나 잘나가던 사업 다 망해서 지금 도망다니는거 알지? 신용불량자라는 말은 알아? 파산이라는거 들어봤니? 무섭지? 응? 세상은 이런거야. 험악한 곳이지. 너희같은 애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어. 내가 도와줄께. 날 따라와. 학원에 가. 수능을 잘 봐야해. 내신도 신경써야하지. 과외를 붙이자. 논술도 해야하고 봉사활동 시간도 채워야해. 만능이 되어야 한다구. 대학이 인생을 결정해. 좋은대학 못가면 끝이라니까. 지금 한시간 덜자면 미래의 네 남편 월급이 바뀐단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야해. 고등학교 나와선 사람대접 못받아. 아니, 내가 안해줄거야. 너도 아빠처럼 기름밥 먹을거냐? 대학에 가면? 경제감각을 익혀야지. 10대 벤처 사장들 얘기 못들어봤니? 주식 펀드 재테크 수익률. 20대에 1억 만들기는 읽었어? 그리고 요즘 영어 다 해야하는거 알지? 영어학원도 다녀야되. 회화는 능통. 토익은 몇점? 요즘 어학연수 6개월은 기본이지. 돈이 없어? 필리핀도 괜찮아. 제2외국어는 몸값을 올리기 위한 필수옵션. 요즘 중국어가 유망하지. 컴퓨터는? 어서 자격증 따. 웰빙 알아 웰빙? 몸매관리 좀 해야지. 피트니스 3개월 끊고. 외모도 경쟁력이야. 쌍커풀 정도 해줘야지. 대부업체에서 등록금 빌린 대학생이 자살했다네. 저런. 그러니까 내말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아. 일등 신랑감이 뭔지 알아? 공무원이야 공무원. 짤리지도 않잖아. 노량진으로 오렴. 임금? 일자리가 있는걸 고맙게 생각해야지. 뭐 취업난? 중소기업 가면 일자리가 부족해. 편한 일만 하려고 하는 너희들이 문제야. 눈높이를 낮춰.
그 시절에 우리는, 지금은 유명한 진보정당 인사를 물리치고 서울의 한 지역구의 국회의원이 된, 하버드 유학생의 자서전을 읽고, 막노동을 하며 재수에 재수를 거듭한 끝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한 어느 젊은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했던 선생님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두번째로 묻습니다. 20대의 정치적 무관심, 보수화, 사회적 냉소가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80년대의 소위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 이후, 안일한 사회의식속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자아와 사회에 대해 배우는 시기에, 경제위기를 맞아, 정치적 사회적 관심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그게 다인가요? 공부하고 돈버느라 바빠서, 사회에 관심을 보일 기회를 잃고, 관심을 가질 생각 조차 없어졌다, 그 뿐인가요?
또 다시 이해찬씨 이야기입니다만, 어디까지나 예일 뿐입니다. 다들 똑같았어요. 주로 80년 출생인 99년 대학 입학생들에게 이해찬씨는 친히 편지를 보냈습니다. 시대가 변했고,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으니, 괜한말에 현혹되지 말고, 학생운동 하지마라, 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편지였죠. 그랬습니다. 다들 그랬죠. 세상이 변했다. 더이상 이념대립은 무의미하다. 이제는 자신의 실력을 키울때다. 아직까지 데모하는 놈들은 다 빨갱이들이지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싶으면 네가 높은 사람이 되어서 그들을 도와줘라. 세상을 바꾸는게 아니라. 이젠 화해와 통합의 시대다. 지금 경제가 위험한데 정치가 대수고 사회가 대수냐. 노동조합? 지금 노조하는 사람들은 다 귀족노조지. 자기 밥그릇만 챙기려고 하는 이기적인 인간들이야. 아 시끄러워. 차 막혀.
그렇게 우리는, 정치와 사회는 쓸모 없는것이라고 배웠습니다. 투쟁을 투정이라고 비웃는 것을 배웠고요. '사람'과 '생태'를 이야기하며 도인이 된 옛 민주화의 투사들과, 대머리 학살자의 맥을 잇는 당에 들어가 금뱃지를 단 386들은 더이상 거리에서 외치는 때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내용이나 주장 혹은 조직 내의 문제가 어쨋든, 대학생 최대의 학생조직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었고, 빨갱이가 되었고, 아무도 그들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인권운동사랑방과 전농 만이 그들을 변호했다던가요? 아무튼 시대에 뒤떨어진 바보들일 뿐이었죠. '20대에 맑시스트가 아닌자도 바보요, 40대에 맑시스트인자도 바보'. 이 말이 너무, 화가납니다. 사회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하나의 유행과, 어린날의 치기로 만들어 버리는 이 말이, 나이를 먹으면, 성숙해지면, 그런것을 잊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이 말이, 너무나 싫습니다. 선생님들은 그런 말을 자랑스럽게 내뱉으며, 이제는 때가 지났으니, 너희도 지나간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성숙한 어른이 되라고 이야기했죠. 술을 한잔 걸치면, 생활인으로 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위로하고 '나도 한때는'으로 시작되는 학생 시절의 무용담을 읊으며, 요즘 데모하는 애들은 그렇지 않다고,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했죠. 혹 '시민운동'을 대안으로 이야기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그 시민단체들은 자금운영이 되질않고, 선생님들은 살기에 바빠, 벌이의 1/10도 그들에게 '투자'하지 않지요.
학생운동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조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은 '전위'의 '투사'로써 사회운동의 부분이 되었을 뿐,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그것이 의미있는 일이고, 선배들의 노력을 존중합니다만, 학생의 운동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운동이었죠. 419도, 610도 마찬가지로요. 학원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만, 사회 전반의 민주화 운동의 일환으로 그쳤을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생운동은 중요합니다. 정확히 말해, 학생 시절에 그들의 문제를 그들의 힘으로 결정하고 풀어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마땅히 그것을 배웠어야 할 중등교육에서 그 역할을 하지 못했기에, 대학시절은 마지노선입니다. 자신이 지불하는 등록금 한 번 결정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자신이 받는 임금을 협상하겠습니까? 자신을 가르치는 성실하지 못한 교수 한 번 징계하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제 고용주와 관리자를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학교의 수업과 정책에 대해 토론 한 번 해보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까? 우린 그런것을, 배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죠. 설령 소위 '학생운동'의 문제가 있었을지언정, 선생님들은 그것을 지적하고 이끌어 주지 않았죠. 혹 그 '이적단체'로 규정된 학생단체가 잘못되었더라 하더라도, 그 외의 어떤 다양한 시각과 사회적 발언에 대해서 깡그리 무시했죠. 아니, 그들의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죠. 그들의 주장에도 관심이 없었고요. 그저 그들을 욕했을 뿐. 빨갱이로 매도했을 뿐. 그리고 우리들을, 그들에게서 분리했을 뿐. 그래서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들 데모하지만, 심지어, 정부종합청사 주변의 주민들이 아이들의 학습에 방해가 된다며 시위를 하지 말것을 시위하기도 하지만, 노동자와 농민, 운동단체, 그리고 학생들만은 절대로 집단행동을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죠.
그리고 지금, '20대는 왜 사회의 문제에 나서지 않는가'에 대해 정연한 논리를 늘어놓지만,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이들과 그들을 매도하던 이들, 고인이 된 전 대통령의 후계자 중 하나로 지목되는 인물이 10년전 우리에게 보냈던 편지는, 그 논리의 전개에 전혀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런 변명에 대해서, 선생님들은 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0대들을 보아라. 저 아이들도 세상에 대한 판단이 있고 행동하는데, 너희들이 무슨 변명이 필요하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맞는 말씀이십니다. 이런 모든 상황을 이기고, 스스로 세상을 보고 판단해야죠. 어른들의 말에, 언론의 외침에 현혹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10대들은 자라서 무엇이 되나요? 20대가 됩니다. 선생님들이 지금 비판하는, 우리와 똑같은, 20대요. 2008년 여름에 촛불을 들었던 고교생들은 아직 희망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두발 자율화'를 비롯한 중고교생의 주장, 그리고 PC통신과 웹을 통한 모임들은 90년대 말,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저, 우리 20대 들이 10대이던 시절이죠. 그 아이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나요? 2002년 미선이 효순이 사망사건에 촛불을 들던 그 아이들은 무얼하고 있나요? 탄핵정국에 촛불집회에 나가, 시민자유발언을 하고 큰 박수를 받던, 그 고교생은 지금 어떤 사람이 되었나요?
10대들이 발언과 활동들이 희망이라면, 이미 현재 20대들에게서 그 영향이 나타났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생각나는 사람은, 강의석씨 정도 있겠네요. 저도 10대들이 희망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여의도에서 열린 노동절행사를 구경하는데, 어느 고교생 단체에서 나온 학생이 '정치연설'을 하더군요. 말도 잘하고, 무엇보다 연설이라는 것에 익숙한 호흡과 발성, 그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전 부정적입니다. 그 애들이 자라서, 우릴 밟고 올라서는게 두려운게 아니라, 제가 대학을 다니며 그런 새내기들을 만난적이 없기때문에 두렵습니다. 세상과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던 아이들도, 군복무 마치고 4학년이 되면, 똑같이 토익과 '자소서'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10대의 아이들이 제 문제인 입시에 대해서, '모의고사를 집어던지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지 못하기에 그렇습니다.
10대들, 486선배님들의 아이들, 그 아이들도 대학에 가기위해 아둥바둥 하고 있겠죠. 촛불집회에 엄마 손 잡고 나온 어린이들도, 대안학교를 다닐진 모르겠지만, 결국에 또 대학에 가기위해 떠밀려 다니겠죠. 한때 사회의 민주화와 노동해방, 민족자주를 부르짖던 선생님들의 아이들도, '공돌이'와 '공순이'가 되고싶어 하진 않겠죠. 어릴땐 멋있어 보이는 직업들을 따라, 하루에도 몇번씩 장래희망이 바뀝니다. 버스운전기사 아줌마, 빵집주인, 소방관, 경찰관, 청소부 아저씨, 전기공 아저씨, 농부, 기능공, 목수... 그 아이들은 자라서 모두 똑같은 장래희망을 갖게되죠. '의사''변호사''선생님''회사원''공무원'... 선생님들도 아이가 목수가 되고싶다고 하면, 아이를 위해 목공의 장인을 소개해 주진 않겠죠. 아니 요즘엔, 그런 도제 시스템을 찾기도 힘들테지만요. 농부가 되고싶은 딸에게, 농업고등학교를 나올것을 추천하지는 않으시겠죠. 빵 많이 먹고싶어서 빵집주인이 꿈인 아들에게, 직업학교 원서를 가져다 주시진 않겠죠. 프로게이머가 꿈인 아이에게, 설령 그 꿈을 찬성한다 하더라도, 또 안타까운 선생님은 '프로게이머학과'가 있는 대학을 알아보시겠죠. 결국에 그들 모두는, 도서관에서 토익책을 끼고, 자격증 수험서를 들고 만나게 되겠지요. 대기업에 취직해서 술을 사는 선배를 부러워하며, 공무원에 합격한 친구를 시기하며,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접속해 웹에 모여 한숨을 짓겠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10대가 되고, 10대는 20대가 됩니다. 그렇게, 길러집니다.

그동안 선생님들은 무엇을 했느냐는 것을 묻지는 않겠습니다. 대통령이 탄핵 된 것은 큰 일이지만, 노동자의 죽음이 그보다 대단하게 여겨지지 않는 정의와, 광우병 소고기 수입은 안될 일이지만, 철거민이 사망하는 것은 참을수 있는 양심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왜 당신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지, 어떻게 '입시'를 앞둔 학부모들은 좌우대통합을 이루는지, 참아 드리겠습니다. 90년대 학번도 교수가 되기 시작했지만, 교수사회에서 어떤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것이나, 옛 '386'사장님들과 회사의 중견 관리자들이 노동시장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 따지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한 일들을,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잊지는 마시라는 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하고 있는 그 이야기들, 멈추시라는 겁니다. 현재의 20대에 연대하고 싶으시다면, 그게 순서라는 겁니다.

결국 제가, 혹은 20대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하는것도 아닙니다. 그저 한번쯤 해 보는, 변명일 뿐이지요. 우린 잘못되었어요. 이 모든 책임은 우리가 져야만 합니다. 누가 해 줄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단 한마디, 미안하다고, 자조섞인 쓴웃음일 지언정, 하지 못한다면, 이 모든 일들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네, 그래요, 맞습니다. 우리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선생님들께도, 또 저기 어딘가의 사장님들께도, 유모차를 끌고가는 아이 엄마에게도, 우리 모두에겐 희망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도 돌아보고 반성하지 않으니까요. 아무도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 하지 않으니까요. 그 누구도 서로의 삶을, 연민하지 않으니까요.

2009/07/28 21:25 2009/07/28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