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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신년삽질 (4) 2009/01/07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1/31 00:36

9293일. 단순히 계산하면 223032시간, 11381920분, 802915200초... 학교를 나오면서 앞으로의 막막한 불안감에 인파속의 기차안에서 다리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울었던 그 밀레니엄의 날로부터는 벌써 9년이, 엉겁결에 들어간 대학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당황하던 그때로부터는 28번의 계절이, 아무것도 갖지 못한채로 집으로 들어와 시골에 파묻히고는 586번의 일출과, 두번의 첫눈이 지나갔다. 어쨌거나 남은 자신을 돌아보면 그렇다, 그냥, 얼룩덜룩하다. 7번의 계절이 지나가는 동안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다. 야마구치 카쓰미의 만화에서 처럼 '미래가 보이지 않지만 달리 어쩔 도리도 없어서 그저 자신을 누군가가 사준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여기고 가고싶지도 않은 회사에서 거부당하고 가고싶지도 않은 회사에 애교를 팔아'보았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특목고와 선행학습과 토플텝스토익 따위를 공부하는 아이들을 연민하면서 결국 나도 그들과 같이 떠밀려 자격증과 어학점수를 두리번거리며 그들과 대등하게 만나는 순간은 오직 어느 주말, 인근 중등학교 교실의 시험장에서일 뿐 아무 힘을 갖지 못했고, 내 아이의 학원 갯수에 전전긍긍하며 불안해 하는 부모들의 광기를 끔찍해 하면서 또한 나도 그들과 같이 나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며 끊임없이 나의 학벌과 나의 수입과 대출이자 따위를 재고있다. 그리고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한때는 친구들과 통음이라도 하며 토해내던 말들을, 이제는 겨우 몇알의 알약에 흐려진 정신으로 원치않는 이야기를 정리도 되지않은채 중얼중얼, 손가락으로 눌러볼 뿐이다. 불만은 이래저래 주워섬기고 변명은 이것저것 늘어놓지만 결국에 나는 주장할 것이 없다. 세상은 여전히 괴롭고,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나는 뉴스조차 읽고싶어하지 않으며, 하고싶은건 없어도 갖고싶지 않은 직업 몇가지 꼽을 정도의 알량한 자존심 혹은 구차한 사회의식 정도가 남아서 나를 경계로 몰아간다. 모두가 행복을 말하지만 누구도 행복할수 없는, 누구나 불행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나는 감히 눈을 뜨고 행복을 꿈꾸는 바보가 되지도, 혹은 눈을 감고 행복을 훔치는 도둑이 되지도 못한다. 흠.

2009/01/31 00:36 2009/01/31 00:36

신년삽질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9/01/07 00:14
언젠가 오래전부터 흠모하고 있던 머리 모양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외형과 습관같은것의 변화에 대해서만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라, 그러니까 한마디로 안하던 짓을 하려니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또 어색해서 참고 있었는데, 여행을 하던 도중 영국의 어느 버스에서 나의 이상형을 한 아가씨를 발견, 나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주일 만에 머리를 잘랐지만 이건 뭐.... 중학생때의 단발머리가 되었을 뿐, 손군은 나의 머리를 보고 '빵떡'같다고(ㅅㅂ ㅠㅠ) 말했을 뿐이었다. 그 후 계속해서 틈틈이 인터넷에서 이상형의 머리에 가까운 머리모양을 찾아보기도 하던 중, 나는 중대한 결심을 내렸다.
25년 4개월간, 머리손질에 칼과 가위 이외의 미용기구 일체를 허용하지 않은채 순결-_-?을 지켜오던 나의 머리에 산과 염기를 이용한 단백질 결합의 변형, 그러니까 말하자면 파마를 하기로.
일주일 전 연말의 어느날, 혼자 파마의 첫경험이 너무나 긴장되어, 손군을 대동하여 미장원에 가서, 저 머리를 이러저러 하게 하고싶은데요, 그러면 자 이 책에서 골라봅시다, 네 이런거요, 네네 그러면 이만큼의 길이로 자르고 이정도로 머리를 구부리면 되겠네요, 네네, 가격은 오만원입니다, 시간은 두시간 정도 걸리구요, 네네.
그리고 가위로 머리를 정리하고 무언가 액체를 머리에 바른뒤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뜨거운 열기구 아래에서 졸다가 또 무언가 차가운 액체를 머리에 뿌리고 또 머리를 감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거울을 보았다.
아줌마파마를 한 곱슬머리 소년이 서있었다.
쿠아아아앙! 이게 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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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을 향해 가던 시내버스에서, 어느덧 나 혼자만이 승객으로 남았을 때, 강아지를 안고탄 초등학생에게 버스기사아저씨가 "얘야 원래 강아지를 데리고 타려면 이동가방에 넣어서 타야하지만 지금은 특별히 저기 남자손님 하나 뿐이니까 봐주마. 다음엔 엄마한테 얘기해서 꼭 이동가방을 사야한다. 이동가방은 강아지 밥사는곳에 가면 있단다" 라고 친절히 일러주는 훈훈한 장면에 외롭게 앉아있기도....
그래서 나는 너무나 구불구불한 머리를 조금 펴보고자 주변(손군과 엄니)의 만류에도 아량곳없이 집에 돌아가자마자 머리를 감고 다음날도 또 머리를 감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의 머리카락 단백질의 결합은 거의 원형을 되찾아버렸다. 5만원은 어디에!!! 그런고로 당분간 연락하지 마세요. OTL

겨울이 찾아오자 마당의 개, 마루가 또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물그릇의 물은 매일같이 얼어서, 물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물을 줄때마다 헐떡거리며 첩첩첩첩 물을 먹는것도 그렇고, 날이 춥고 내가 밖에 안나가니까 산책도 못하고 묶여만 있는것도 그렇고, 추운날에 웅크리고 있다가 사람이 오면 고개만 빼꼼히 들고 여전히 웅크린채 있는것도 그렇고...
신년을 맞이하여 집에 안입는 옷들을 죄다 정리해서 버리고, 조금 쓸만한 옷은 중고가게에 가져다 주는등의 정리를 하면서, 남주기는 그렇고, 그렇다고 내가 입지도 않는 옷 중 가장 많은것이 학생시절 생겨난 각종 단체티, 농활티, 행사티-와 같은 것들이었다.
큰마음 먹고 농활티를 이용, 마루에게 옷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 참고로 나의 바느질 실력은 웬만한 초딩에게도 뒤지는 실력으로... 한마디로 절대로 봐줄만 하지가 않다. 하지만 뭐, 따뜻하기만 하면 되고, 아무리 못만들어도 마루는 나에게 불평을 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에 만들어 보았다.
도안 이런건 없고, 그냥 대충 네모로 자른것을 두장 마련한 뒤, 목이랑 몸통, 앞다리 들어갈 구멍만 남기고 나머지를 박음질.
두시간 동안 열심히 바느질. 완성!
그런데, 작다....OTL 옆을 살짝 튿어서 천을 더 이어붙여 보았지만, 옷이 더더욱 누더기 패션이 되었을 뿐, 여전히 작다. 일루에게도 겨우 끼어 들어가는 사이즈.
크기도 재어 보지않고 대충 맞을것이라 생각한 나의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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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에 보이는 문구는 "한미FT...우리농업..."

일루에게 입혀본 뒤 알게된 사실 : 고양이에게 테이프를 붙이면 제대로 못걷는다는 말은 고양이에게 붙인 테이프를 뗄때의 잔혹성과는 별개로 사실인듯. 싫다고 다죽어가는 소리를 내는걸 억지로 붙들고 꽉 끼는 옷을 입혔더니 비틀비틀거리며 도망쳤다. 사료로 유혹해 봤지만 사료까지도 제대로 못오고 비틀비틀. 내가 들어서 옮겨주니 사료를 줏어먹는중. 그동안 나는 사진을.... 마찬가지로 죽는소리를 내며 버둥거리는걸 겨우 벗겨주었다.

옷을 완성하기전 내가 개 옷을 만든다고 하자 손군은 이렇게 말했다 : 연습해서 내 옷도 만들어 보렴
저 사진을 본뒤 손군은 이렇게 말했다 : 됐어. 내가 본 개 옷 중에 가장 개판이야.
저 사진을 보고 깊이 감명-_-받은 손군이 ㅇㅈㄹ형님에게 사진을 보내자, ㅇㅈㄹ형님께서는 친히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 허접한거 하나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

쿠아아아아앙!
2009/01/07 00:14 2009/01/07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