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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루의 변화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07/12/13 01:46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일루는 게으르다. 원래 인간이란 제가 본게 세상의 전부인줄 알고 사는 종족인지라, 손군은 일루가 고양이의 표준인 줄 알고, 고양이란 게으르고 겁많고 식탐이 강한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일루가 게으르고 겁많고 식탐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도 일루와만 살았다면 그랬겠지만, 난 겁없고 활발하고 동네고양이와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는 친구의 고양이와도 살아봤고, 시끄럽고 애교많고 날씬한 고양이의 탁묘도 해 봤다. 물론 이 모든 고양이들은 다 다정하고, 일루는 나에게 가장 다정한 고양이지만.
아무튼 일루는 조용하고 게으르다. 누가 고양이가 야행성이라 했던가. 물론 일루도 밤에 뛰어다닌다. 한 10시부터 다음날 2시까지. 하지만 그 후엔 잔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달라고 조른 뒤 밥먹고 자고, 낮에 일어나서 내가 나갈때 애교 좀 부리고 또 자고,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거실이 좀 시끄러워 지면 깨어나서 애웅애웅 울어서 엄마님께 밥을 얻어먹은 뒤 좀 뒹굴거리다 보면 밤이 되고. 원래부터 그랬던건 아니다. 어릴때는 어찌나 뛰어다니면서 장난을 치는지 나는 밤에 잠을 잘수가 없었다. 증거사진도 있다. 장난치느라 물고 할퀸 손발의 상처들.

보자


아아... 꼬꼬마 초딩 일루를 보니 잠시 감개가 무량하군. 아무튼 일루는 10개월이 넘어가면서 장난이 없어졌고, 친구와 자취를 하면서 다른 고양이와 함께 살게되자 엄청난 식탐을 자랑했으며 살이찌기 시작했다. 난 그저 어릴때는 다 촐랑대기 마련이지만, 커가면서 성격이 형성되는 것이겠거니, 일루가 조용한 것은 성격이겠거니 했고, 살이 쪄서 늙어서 고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고양이의 다이어트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나 : 일루가 살이쪄서 걱정인데 다이어트라도 시켜야 할까?
친구 ㅎ 양 : 사람도 힘든 다이어트를 고양이가 어떻게
손군 : 니나해
-_-
아무튼 이런 실정이었고, 사실 나는 일루에 대해 별로 불만이 없었다. 지금도 그렇고. 사실 일루는 꽤 착하다. 별로 사고를 친 적도 없고. 내가 아무리 장난치며 귀찮게 해도 발톱을 내밀지 않고, 아프게 깨물지 않는다. 내가 실수로 꼬리를 밟아도 화도 내지 않는다. 일루의 조용한 성격이 좋고 은근한 다정함이 좋았다. 누가 그랬던가 고양이는 70%의 다정함과 10%의 자존심과 20%의 털로 이루어 져 있다고. 일루는 70%의 다정함과 10%의 식탐과 20%의 털로 이루어 진 고양이다.

2년 반동안의 자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 방은 원래 방이 아니었던 곳을 방으로 만든지라 모양이 좀 이상하지만 방이 꽤 넓다. 웬만한 원룸보다 조금 더 넓은데, 원룸이란 그 안에 화장실도 있고 주방도 있고 등등 잡다구리 하지만 내 방은 어디까지나 방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훨씬 넓다. 게다가 이전엔 바깥 나들이를 거의 하지 못하던 일루였지만, 지금은 내 동생 방으로도 갈 수 있고, 가끔 부모님이 잠든 밤에 거실 나들이도 몰래 할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일루는 조금 활발해졌다. 새끼일때 보고 못봤던, 종이 뭉쳐서 던져주면 축구하기 놀이를 보여주기도 하고, 3년 넘게 같이 살면서 한번도 못본 개짓; 을 하기도 했다. 개짓이라니 너무 어감이 안좋지만-_- 실제로는 고양이를 키운 보람이 와르르르와르르르밀려드는 아주 훈훈한 놀이다. 손가락만한 골판지 쪼가리를 던지면 일루가 그걸 물고오고, 던지면 또 물고오고, 던지면 또 물고오고.... 물론 일루는 개가 아닌지라 하다가 지루하면 그만두고, 또 내가 그걸 던진다고 맨날 하는건 아니고, 지가 하고싶을 때만 한다. 하지만 한 번 시작하면 적어도 20번 정도는 반복해주는 서비스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 골판지나 다 물고 오는게 아니라 지가 물고 오고 싶은 골판지만 물고오는데, 일루의 골판지 선정기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물론 요즘도 일루는 많이 먹고, 많이 자지만 적어도 이틀에 한번씩 보여주는 일루 쑈에 살맛이 난다. 다만 그동안 방이 좁아서 저렇게 뛰어다니고 싶었는데 못한걸까 하는 생각에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일루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일루는 나와 함께 살게 된 것을 행복하게 여기지 않을까 한다.
2007/12/13 01:46 2007/12/13 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