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망각을 둘러싼 갈등과 투쟁의 양상을 '기억의 정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김영범은 기억의 정치를 "집합기억(Collective memory)의 역사화나 무화(無化) 과정에 개입하는 사회, 문화적 및 정치적 힘들의 역학관계와 그것을 둘러싼 담론적 실천의 기제를 일괄하는 개념"으로 정의하였다.
김민환, 누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p400 [출처]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는 매우 정치적인 문제이다. 수 많은 사례들에서 이미 경험적으로 알다시피, 국민국가를 수립하면서 집단적 기억이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매개물이 되었고, 국가는, 가진자들은, 강자들은 그 집단 기억을 선택하고 조작하고 또 전승하기 시작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상황의 약자들은, 기억 만큼이라도 자신이 선택하기 위해 노력했다. 최후의 저항, 가냘픈 투쟁. 너희들이 한 일을 잊지 않겠다. 너희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똑똑히 지켜봐 주겠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서러움.
그 기억 조차도 포기한다면 무엇이 남을까.
나는 평택에 대해 좋은 기억이 하나도 없다.
2004년 평택에 갔을때 나는 길을 잃고-_- 혼자 떨어져 소위 말하는 '폴리스라인'과 K6부대 담장 사이를 헤메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불심검문을 당했고 실제로 임의동행을 요구받았다. 그리고 나는 방패따위로 처맞는것 보다 옥상에서 주민들이 던지는 계란에 맞는것이 훨씬 더 슬픈 것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2006년 천식이 심해져서 병원에서 감기를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은 뒤, 나는 철면피처럼 나에게 할당된 천막 농성장에서 숙식하는것도 모두 다른이에게 미루고 꾸준히 노력하였지만, 평택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폐렴에 걸렸다. -_- 일주일 정도 입원 했고, 퇴원하고 열흘쯤 지나자 대추초등학교가 무너졌고, 강제집행이라는 것이 진행되었고, 대추리에는 사람이 살지 않게 되었다.
시사투나잇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대추리 주민들이 나왔다. 몇일전 미군기지 기공식을 했다고 했고, 주민들에겐 벌금이 4억원이 넘는다고 했고, 강제이주된 주민들은 쓸쓸하게 살고 있었다.
몇달간 나는 한번도 그들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나는 계속 지고있는것 같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