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에 해당되는 글 7건

  1. 아버지의 세대, 우리의 세대. 2007/03/30
  2. 김민기, 봉우리 2007/03/28
  3. 군대 (7) 2007/03/15
  4. 졸업 2007/03/07
  5. 다리가 짧아서 슬픈 짐승 (4) 2007/03/05
  6. shutdown (1) 2007/03/03
  7. 문태준, 젖물리는 개 2007/03/01
차붐@월드컵 7 나에게 축구는 '전투'였는데 아들 두리는 '행복한 생활'인듯

[중앙일보 2006-06-19 06:37]    


[중앙일보] 한국에서 우리 부자의 얘기가 화제라고 한다. 도대체 뭐가 재밌다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잘 안 갈 뿐이다.

젊은 세대, 그들의 생각과 감각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면서 내가 그들과 함께 몸을 섞고 일을 하고 있는 게 맞는 일인지 걱정스러울 정도다.

요즘 TV에 나와 정신없이 떠드는 녀석이 하나 있다. 노홍철이라고. 몇 년 전, 우리 가족의 크리스마스 파티에 이 친구가 왔다. 큰딸(하나) 대학 동기의 남자친구라고 하면서. 쓸데없는 얘기지만, 딸의 대학 동기는 유로 상공회의소를 거쳐 G그룹의 경영전략실에 근무하는 멀쩡한 재원이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남자친구를 보자 기가 막혔다. 그런데 아이들은 재미있어 좋다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세대차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상황이 노홍철이를 처음 봤을 때만큼이나 곤혹스럽고 불편하다.

나는 10년간의 독일 분데스리가 생활 중 선발로 못 나온 게 딱 두 번 있었고, 중간에 교체돼 나온 게 한 번 있었다. 그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줄 알았다. 내가 얼마나 심하게 낙담을 했으면 감독이 그 다음 경기 전에 나를 불러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다음부터 너를 빼려면 미리 말해줄 테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뛰어라!"

그 당시 나에게 축구는 생활이 아니라 '밀리면 끝나는 전투'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 두리는 확실히 다르다. 축구는 '자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생활'인 것 같다. 축구를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좋은.

그러니 TV 해설을 하면서 이놈은 "전 그때 후보라서 잘 몰라요"라고 멀쩡하게 얘기하는데 옆에 있는 내가 진땀이 났다.

내가 두리에게 배우는 게 하나 있다. 언젠가 자전적인 글에도 썼던 적이 있지만 '남의 행복이 커진다고 내 행복이 줄어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이 녀석은 항상 여유가 있다. 늘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남을 인정하는 여유가 없는 나에 비해 두리는 동료를 인정하는 여유가 있다. 그래서 두리의 삶이 나보다 더 즐거운 모양이다.

'행복이'.

두리의 e-메일 닉네임이다. 굳이 그런 이름을 쓰는 걸 보면 천성이라기보다는 행복하고 싶어 스스로 하는 노력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연예인들을 얘기하듯, 외국 축구선수들의 사생활까지 줄줄 꿰는 두리가 옆에 있으니 든든하다. 스페인의 황태자비가 화면에 잡히자 '예쁘죠?'하는 말이 하고 싶어서 혼났다며, 중계를 마치자마자 황태자비의 전력에서부터 사생활까지 쫙 얘기해 준다.

두리와 함께 해설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한때 '기자'를 꿈꿀 정도로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두리에게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이전처럼 유럽축구에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축구의 흐름을 읽는 거야 자신이 있지만, 선수들의 현재 상황을 팬들에게 현실감 있게 설명해 줄 경험과 정보가 부족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두리는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또 나와 다른 요즘 아이들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친구들의 얘기를 하는 것이니 내가 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본인도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축구선수이면서 베컴의 자서전을 머리맡에 놓고 잠들거나 지단에게 가서 공에 사인을 받고는 즐거워하는 것은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나는 그러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단한 선수였어도 나에게는 한번 붙어 보고 싶은 경쟁자일 뿐이었다.

우리 시대의 삶은 '성공'에 모든 것을 두었다. 그러나 두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행복과 즐거움'이 그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부럽다. 그리고 이런 세상을 그들에게 물려준 우리 세대가 자랑스럽다.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 중앙일보 해설위원


지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작년 월드컵 때의 신문기사를 꺼내는 것은 뭐 특별한 이유가 있는것은 아니다. 그냥 한 번 이 글에 대해 이야기 해 보고 싶었는데, 최근에 상담을 받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자꾸 끄집어내서 그렇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내일 영어 퀴즈가 있어서 공부를 해야하는데 공부가 하기 싫어서-_- 공부하다가 잠깐 생각이 나서 써본다.

아버지의 세대는 분명히 훌륭하고, 많은것을 이루었다. 많은 아이들을 밥 굶지않게 키워냈고 20대의 절반 정도를 대학에 보낼 만큼 공부도 시켰다. 물론 상품화 된 것들의 가치만을 따지는 GNP 따위의 수치로 성공이나 삶의 성장을 나타낼 수는 없지만, 그리고 이전에는 이무렇게나 떠다 먹을수 있던 물을 생수로 사다먹게 되고 그것이 또 경제수치에 포함되는 그런 모순을 인정하지만, 분명히 아버지의 세대는 약진이 있었고 인고가 있었고 노력이 있었다. 그런 아버지들의 세대는 정말이지 자랑스럽다.

그러나 차범근의 글이 아름다운 것은 그러한 아버지의 세대를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것과 동시에, 아버지의 세대와는 분리된 아들의 세대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들의 세대를 부러워 하고, 성공이 아닌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가치에 대해 존중하고 있다. 그 인정과 존중이 아름답다. 그리고 또 나는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야기 하고싶다.

아버지의 세대의 유산으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그리고 그것이 자랑스럽고 또 감사하지만, 우리들의 세대는 아버지의 세대를 따라가서는 안된다. 그것은 아버지 세대의 몫이었고 그들의 임무이고 그들의 가치였다.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는 분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버지 세대의 공은 오롯이 공으로 남고, 우리세대는 또 우리 세대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이고 건강한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아버지들은 우리들에게 자신의 세대와 같은 길을 걸으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아버지들을 따라 성공을 위한 전투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 치도 다르지 않은 그 길에서 우리는 아무도 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세대의 공은 더이상 공이 아니라 과와 실이 점점 더 자라나고 있고 우리세대는 거기서 정체하고 있다. 세상에 발전이란 없고 행복이란 없다.

성공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의 가치를 갖게 되면 주변을 둘러보게된다. 남과 경쟁해서 이기는 전투의 칼과 피에 젖은 갑옷을 내려놓을 수 있다. 아무도 패배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 아버지세대의 공은 그런 가치를 찾아낼 수 있게 한 것이고, 우리세대의 길은 그 가치를 실현하는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세대가 그 가치를 실현할 때, 우리는 또 아버지세대가 되고, 우리의 다음 세대는 그 다음 길을 찾아갈 수 있을것이다.

그런 발전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것이 바로 아버지 세대와 우리 세대의 분리다. 그런 분리를 인정하고 존중하기에, 차범근의 글이 아름답다.
2007/03/30 01:58 2007/03/30 01:58

열다섯 무렵에 민가 같은것들을 접하게 되면서 김민기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김민기를 좋아하게되었다. 주여, 이제는 여기에, 천리길, 바다, 아름다운사람, 날개만 있다면(하지만 어린아이 목소리가 안올라가서 떨리는 부분은 좀 거북하다-_-), 친구 뭐 이런 노래들을 좋아했고, 그리고 이 노래도 많이 좋아하는 노래다.

밤 11시 30분이되면 컴퓨터와 핸드폰에서 자라고 하는 알람이 울리는데, 뭐 그러면 대충 잘 준비를 한다 씻고 약먹고 불끄고... 그렇게 누워도 바로 잠드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어쨌든 잘 준비를 하고 불을 끄려는 찰나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잊어버려, 그냥 오르는 거야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것이 저며올때는, 그럴땐

그 말들을 중얼 중얼하다가, 다시 몸을 돌려서 노래를 틀었다. 그래서 그냥 올려본다. 나도 지금, 내가 가야할 길을 열심히 가고 있는 중인거야. 그럴거야. 나도 잘 할거야.

가사는 그냥 들으면서 써서, 줄바꿈도 마침표 쉼표도 자의적이고 가사를 다르게썼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길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2007/03/28 23:40 2007/03/28 23:40
대학에 들어와서 많이 변하기도 했고, 또 전혀 변하지 않기도 했다. 사람에게 결국 달라지지 않는 부분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 하기도 할 만큼. 또한 많이 배우기도, 또 전혀 나아지지 않기도 했다. 인간의 성장이란 노력하지 않고는 결코 얻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전에는 단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 해 보지 않았던 것들 중에서,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것 중 하나는 군대가 싫다는 것이다.

나는 군대가 싫다. 우리나라 그 어떤 남자들 보다, 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그들만큼 나는 군대가 싫다. 젊은날의 좋은 친구들을 빼앗아가는 군대가 싫다.

나는 군대에 다녀온 뒤 사람이 달라지는 친구들을 딱히 보지 못했고, 사람이되어 돌아오는 친구들을 단 한차례도 본 적이 없다. 좋은친구는 여전히 좋은 친구이고 싫은 사람은 여전히 싫은 사람일 뿐이었다. 단점은 여전한 단점이고 장점은 여전한 장점이었다. 군대에 가지 않아도, 아직은 다소 유연한 20대의 친구들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그정도는 변한다. 그것이 좋은 면이건 나쁜 면이건, 그것은 주어진 환경과 본인의 의지에 따라 정해질 뿐이다. 군대의 좋은점이라면, 지역별로 학력별로, 그래서 결국은 계급별로 나뉘어져 만나보기 힘든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게 된다는 점 말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 역시도 경험일 뿐, 그것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미지수이다. 나는 그래서 군대에 가야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내가 입학할 때 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좋은 선배였던 올해 서른의 군미필자가 있다. 나는 어느덧 내가 입학할 당시의 그 선배 나이가 되었고, 여차저차한 사정으로 여태 군대를 가지 않은 선배는 곧 입대한다. 나는 점점 더 군대가 싫다.


2007/03/15 21:57 2007/03/15 21:57

졸업학점이 20학점 넘게 남은줄 알았는데 수강신청을 하면서 보니 10학점 밖에 남지 않았다. 한마디로 이번 학기 다니면 졸업이 가능하다는 것. 이런걸 잘못알고 있었던 나도 참 어이가 없지만, 갑자기 졸업이라고 생각하니 막막하고, 낮은 성적과 졸업전에 꼭 들어야 할 과목들 때문에 혼란스러워진다.

2007/03/07 12:20 2007/03/07 12:20
인식의 힘
                   최승호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 -니체-

도마뱀의 짧은 다리가
날개 돋힌 도마뱀을 태어나게 한다.



중학교때쯤 읽었던 경구같은 짧은 시이다. 이 시를 오랫만에 떠올린 것은 운전을 배우면서 자각하게된 신체 일부의 길이-_- 때문이다. 나의 몸은 대체로 짧고, 굵다. 키도 큰편이 아니고, 크지 않은 키에 몸의 거의 모든 부분이 두꺼워서-_- 더욱 짧아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나의 키는 우리나라 성인 여성의 평균키를 살짝 웃도는(1cm정도?-_-) 정도이고, 그것을 위안으로 삼고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짧고 또 더욱 짧아보이지만 남들보다 짧은것은 아니야, 라고 생각 하면서. 그러나 운전을 배우면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다리가 굵을뿐 아니라-_- 짧다는 사실을. ㅠㅠ 운전학원에서는 T코스, 평행주차 등을 가르칠 때 도로의 경계석을 보면서 브레이크를 밟도록 나름의 공식을 가르치는데, 나는 옆에서 가르치는 강사아저씨보다 그 경계석을 먼저 본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보통 다리가 짧다는 것은, 앉은키가 크다는 것이고, 앉은키가 크면 시야가 높다는 것이다. 시야가 높으면 경계석을 더 빨리 볼 수 있다. 젠장 ㅠㅠ

영원히 오지 않을것 같았던 3월이 왔고, 개강도 했고, 눈도 왔다.
2007/03/05 23:37 2007/03/05 23:37
열한시반이면 약을 먹는다. 약은 내 뇌의 스위치를 내려버린다. 지금은 몸이 깨어서 이렇게 비틀비틀거리면서 아직 잠들지 않은 것이다. 개강이 다가 오고, 이사와 여러가지 일들 때문에 몸이 피곤하다. 혹시 이것이 개강이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것이 아닐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 아직도 이렇게 두려운 일들이 많은데 3월이 왔다.

다시는 돌아갈수 없음에 대해서 아무리 생각을 더 해 보아도 그것은 이미 정해진 사실. 결국에 나는 부유하게 될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으므로. 이렇게 부유하다가 이제는 3월 이듯이 앞으로도 계속.

shut down되어버린 새벽 2시의 글을 남긴다.

잘거다.

그래도 살아간다는 것이 참. 지울수 없는 낙인. 죄인일 수 밖에 없는.
2007/03/03 02:04 2007/03/03 02:04
젖 물리는 개


어미 개가 다섯 마리의 강아지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강아지들 몸이 제법 굵다 젖이 마를 때이다 그러나
서서 젖을 물리고 있다 마른 젖을 물리고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정을 뗄 때가 되었다
저 풍경 바깥으로 나오면
저 풍경 속으로는
누구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생각 해 보면, 그 어느 시간으로도 우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계속해서 정을 떼고, 밖으로 나오고, 그리고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놓인다. 돌아갈 수 없다. 장강의 물은 흐르고 또 흘러 어제의 물이 오늘의 물이 아니기에, 돌아 갈 곳 조차 없다. 그래서, 라고 해야할까, 환타지의 형식을 빌린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했다. 바보도 범부도 현자도, 모두 앞을 바라보지만 뒤를 생각한다고. 바보는 현재를 살면서 과거에 얽매여있기 때문이고, 범부는 과거를 통해 현재의 지혜를 얻기 때문이고, 현자는 현재를 보면서 동시에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 즉 사물과 현실의 양면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바보의 바라보기를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알고 있다. 나도 언젠가 저 풍경 속에 들어 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돌아갈 수도 기억 해 낼 수도 없지만 나에게도 저 풍경안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쁜일들은 쉽게 상처가 되지만 좋은 일들이 쉽게 힘이 되지는 않는다. 그런 것 까지 내 죄는 아니잖아, 라고 어렵게 변명하고 눈을 돌린다. 

돌아가고싶다, 고 생각하는 것은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고
돌아갈 곳도 허락되지 않았고
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2007/03/01 21:46 2007/03/01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