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하마가 당시 대양으로 가지 않은 까닭은 향기의 미학적 이유에서 찾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하마는 자신의 배설물에 대단히 강한 집착을 보인다. 바꿔 말해서 하마는 하루 종일 주위에 똥을 싸지른다. 주의 깊은 동물원 방문객이라면 아무리 청소를 자주 해도 하마의 우리에 똥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눈치 챘을 것이다. 하루에 열 번이 넘게 물청소를 해도 순식간에 우리에는 다시 똥냄새가 진동한다. 이는 하마가 똥과 오줌으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습성이 있어서이다. 프로펠러처럼 회전하는 꼬리는 이 방향물질을 멀리까지 흩뿌리는 데 매우 효과적인 도구다. 나아가서 하마의 분뇨는 무기로도 사용된다. 이에 대해 독일의 동물학자 한스-빌헬름 슈몰리크Hans-Wilhelm Smolik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두 마리의 하마 수컷이 만나면 그 즉시 꼬리 프로펠러가 작동한다. 한 놈이 분뇨크림을 발사할 때마다 다른 놈도 똑같이 응사한다. 이때 두 놈은 누가 더 많이 발사하는지를 정확히 기억한다. 물론 먼저 탄환이 떨어지는 쪽이 진다. 진 놈은 무시무시한 송곳니가 달린 거대한 주둥이를 있는 힘껏 벌려보지만 소용이 없다."
발정기 때는 분뇨크림 이외에 예외적으로 주먹다짐도 오간다. 하지만 그 밖은 언제나 똥을 더 많이 싸는 쪽이 이긴다. 이것이 적자생존의 생존경쟁과 종족보전을 위해서 어떤 이점이 있는지는 물론 수수께끼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일상에서-특히 정치와 매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 여기서도 자기 주변에 최대한 똥을 많이 싸지르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외르크 치틀라우 지음, 박규호 옮김, 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 뜨인돌출판사, 2007. p45.

내 글을 좀 써야할텐데. 하하-_-;
2010/02/03 13:02 2010/02/03 13:02

낙관주의자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9 15:41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 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 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 계속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 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는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 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써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A People's History of American Empire, 하워드 진 지음, 마이크 코노패키 그림, 폴 불 각색, 송민경 옮김, 2008, 다른. 281-284쪽
(아마도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의 마지막 장 '희망의 가능성' 의 발췌)

이전에 한 번 옮겼던 글이지만 다시 옮긴다. 아리기, 크리스 하먼 들도 가고, 그도 떠났다. '이성으로 낙관하더라도 의지로 비관'하는 나에게 이런 낙관주의자들은 부담스럽다. 결정론에 빠져 있는 나의 치부를 자꾸 건드려서 불편하다. 내가 미국에서 대학 교수를 하던 그 혹은 그들에게 각별할 것은 없지만, 한 낙관주의자를 기억하고자 남긴다.

I am totally confident not that the world will get better, but that we should not give up the game before all the cards have been played. The metaphor is deliberate; life is a gamble. Not to play is to foreclose any chance of winning. To play, to act, is to create at least a possibility of changing the world.
The Optimism of Uncertainty, The NATION.

2010/01/29 15:41 2010/01/29 15:41

深淵

from 백수의일상부유 2010/01/25 23:54
이탈리아 바리에서 그리스 파트라스까지 배를타고 지중해를 건넌 적이 있다. 지중해의 항해, 낭만적일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이동 시간은 길었고, 데크는 추웠으며, 배는 시끄러웠고 3등칸에 해당하는 에어시트는 편히 잘 수도 없었다. 공항에서 노숙한 다음날과 배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린 날의 컨디션이 비슷했다. 매점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 가방의 옷들을 주섬주섬 몸에 두르고 밤새 맥주캔을 쌓다가 웅크리고 잠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리스에 도착해서 신혼여행지로도 유명하다는 섬에 갔다 나오느라 30시간도 넘게 배에서 보냈다. 결과적으로 3일밤을 배에서 자느라 엄청나게 피곤했고, 배 삯은 저가항공보다 비쌌고, 비가와서 즐겁게 놀지도 못한데다 이후의 일정에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스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하지만 한달이 넘는 그 여행에서 가장 인상깊은 단 하나의 장면을 말하라면 나는 배에서 본 밤의 지중해, 그 심연을 이야기하겠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닷가에서 자랐다. 그러나 내게 바다는 시원한 바람이었고 고깃배의 불빛이 빛나는 곳이었다. 바다는 어느때고 무섭게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나에게 바다는 언제나 풍경일 뿐이었다.
긴 밤이었다. 배에서 만난 한국인 남자애 하나와, 좀 더 나이가 많은 콜롬비아 여자 하나와 어울려 맥주를 마시고 잘 이어지지 않는 대화를 어설픈 웃음으로 때우다가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갔다. 해 질 무렵 항구를 출발한 배는 수평선인지 하늘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대해를 항해하고 있었다. 추워서인지 담배를 피우는 몇 사람들 뿐 갑판은 조용했다. 난간에 서서 바다를 내다 봤다. 바다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배가 일으키는 물보라와 엔진소리, 몇개의 등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막막했다. 가슴은 먹먹했다. 바라보는 순간 여기서 단 한발을 내밀어 저 안에 들어간다면 절대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아니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있었다. 심연이 책 속의 활자가 아닌 내 눈앞에 있었다. 어둡고 깊은 못, 따위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냥 심연이었다. 그리고 내 안의 심연을 보고 있었다. 울것만 같았다. 갑판에서 떨어진 담뱃불은 물보라에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무서운 건 아니었다. 대자연에 압도되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성난 파도가 휘몰아치거나 떨어질 듯 바람이 분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것 뿐이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
2010/01/25 23:54 2010/01/25 2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