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회사의 중견쯤 되는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요즘 애들은 자기 밖에 몰라' '요즘 애들은 단체생활이란 걸 몰라' 따위의 이야기에 대해서, 삶의 양식이 바뀌어 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정도로만 생각 해 왔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자기 계발'에 매몰되는 것은 안타깝다는 정도가 내가 가졌던 생각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곳은 반올림해서 창립 40년이 되어가는 정부출연 연구기관이다. 130여명의 직원이 있고, 50여명의 비정규직과, 150여명의 위촉직을 두고 있다. 나는 바로 그 위촉직이고, 위촉직은 비정규직조차도 되지 않는, 사업단위로 계약하는 알수 없는 존재들이다. 나는 학사출신의 행정직이지만, 석사 나와서 연구 업무를 맡는 사람들도, 나와 똑 같은 대우에 단 월 20만원을 더 받을 뿐이다. 9월 1일, 입사한지 3개월 이내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신입 직원 직무 연수에서 간단히 업무과정과 회계, 그리고 조직등에 대한 교육 시간이 끝나고 인사와 복무 규정 등의 시간. 사무국의 총무 인사실에서 나온 연수 담당자는 제발 퇴사할때 어느 정도의 시간을 주고, 서로간에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며 생활하면 별 문제 없으리라 이야기 했다.
마지막에 위촉직 몇 명이 질문을 했다. '야근을 자주 하게 되는데, 연장근무에 대한 1.5배 수당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야근 수당은 왜 나오지 않습니까?' 연수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국정감사에서 허용된 직원과 비정규직의 수가 있고, 그에 대한 급여만이 지불되며, 이들은 연봉제로 계약하므로 연장근무 수당을 받지 않습니다. 위촉직의 급여는 연구사업비에서 지급하며 이 역시 인건비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더 지급 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저희도 정말 안타깝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또한 생산직도 아니고, 야근과 생산성에 대한 관계를 명확하게 할수 없기 때문에 야근 수당을 지급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또 한사람이 질문했다. '야근수당은 그렇다 하더라도, 야근하게 될 경우 저녁식사비조차 나오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도 연장근무하면 수당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담당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저희도 저녁비를 드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에 책정된 예산이 없고, 저도 저희 부서 직원들 야근시킬 때 저녁을 사주고 싶지만, 하루이틀도 아니고 부서 담당자가 사비로 지출하기는 부담이 되는것이 사실입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이 질문했다. '일하면서 정규직 전환 등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까?' 담당자는 대답했다. '비정규직 관련 법에 의해 2년 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문제가, 실제로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보다는 비정규직을 2년 안에 해고하는 원인이 되었고, 저희도 이 점에 대해 문제제기를 꾸준히 해 왔습니다. 그래서 위촉직은 사업단위로 계약을 하는것으로 조금 형편이 나아진 상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게 바로 법과 현실의 괴리죠.'

이런 질의응답때문에 점심시간에 조금 늦었다. 같이 점심 먹자며 나를 기다려주던 같은 부서 사람들이 왜 늦었냐기에, 이런 이야기를 전했더니, 여기서 가장 오래, 2년 넘게 일한 위촉직 두명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애들이 아직 자기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전혀 모르나보네' 또 한사람이 받는다. '난 여기서 2년 넘게 일했는데 1년이상 고용이 지속 된 적이 없어요. 1년 넘게 일하면 연차도 줘아하고 퇴직금도 줘야하고 그렇거든. 그래서 1월 1일부터 12월 10일까지 계약을 해요. 그리고 나머지 20일은 일용직으로 고용을 해. 내 이력서 한번 보면 진짜 엉망이에요. 뭐가 꾸준히 이어져있는게 없어. 난 계속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고용 계약만 바뀌는거지.' 그들은 2년이 넘게, 연구며 사업 관리며 모든 일을 다 하고 있는데, 이제 들어온 나와 똑 같은 월 정액을 받는다. 석사출신인 한 사람은 20만원을 더해서. 한명이 덧붙인다. '그거 노동부에 뭐 얘기하면 퇴직금 이런거 되긴 된대요. 내가 일을 계속한 자료는 있으니까. 나갈때 그걸로 노동부에 진정서 넣으면 주긴 준다더라고. 문제 되긴 싫으니까 조용히 먹고 나가라 이거지.'
좋은 근무환경을 원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줄도 알고 있었다. 만족스럽진 않아도, 내심, 내 양심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의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패배감이 심한 줄은 몰랐다. 이곳의 '위촉직'들이 생각하는 미래라고는, 형편이 되면 유학 가는 것, 그게 아니라면 더 나은데 취직하는 것.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두달 정도 인연을 맺은 이 곳에서, 그 외에 다른 비전을 생각하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돈 없으면 쓰지 마라- 이게 자본주의의 기본 원칙이라면, 돈 없으면 연구 못한다고 배째고, 돈 없으면 사람 못쓰니 일 못한다고 요구하는것도 자본주의의 원칙 아닐까. 대학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소위 조교들도 이런 처우를 받으면서, 비정규직으로, 2년이 넘기 전에 다른 먹고 살 길을 찾으며 살아간다.
공동체 따윈 없다. 부서 사람들은 모두 친하고, 같은 사무실을 쓰는 사람들이 모두 '위촉직' 이라 편하긴 하지만 아무도 이곳에서의 미래 따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좌파든 우파든 대학교수든 박사든 연구원이든, 자기 아래의 대학원생이나 연구 조원들이 이런 처우를 받고 일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는거다. 아무도 제대로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거다. 회사 중견 관리자들은 물론이고. 그러면서 요즘 애들은 공동체 생활을 모른다고 탓하고, 학원이니 뭐니 자기 챙기느라 같이 술 한잔 하는 시간도 아까워 한다고 불평 한다. 그리고 조금 진보적인 사람들이라면, '요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한마디를 더 붙이고. 사업비에서 밥 몇 번 더 사주고, 혹은 사업 좀 더 따오고, 그걸로 고마워하길 바라고.
자기 현실에서 무력함을 느낄때, 사람은 사회에서도 무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제 직장에서 자신의 처우에 대해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이, 정치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낼 리가 없다. 내고 싶을 리가 없다.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진보적인 '말'을 하는 교수들에게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연구 보고서와 논문만 쓰면 되는거냐고. 어쩔거냐고.
2010/09/02 11:21 2010/09/02 11:21
이런저런 할 말은 많은데, 솔직히 마음이 답답하고 정리가 안되어서 각설하고, 이게 아르바이트인지 비정규직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당분간 취직했습니다. 별 일이 다 있군요. 급여도 적고, 정규직으로 전환되거나 승진하거나 급여가 올라가거나 하는 등의 미래도 없고, 오직 칼퇴근 할 수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각종 기안과 지출결의서에 치여 살아야 하는 행정직으로, 전임자와 인수인계를 위해 결재라인을 따라 쭉 인사를 다니는데, 다들 전임자에게 어디든 여기보다 나으니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을 보니 이거 이거 난감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나에겐 어디든 지금보단 나으니 스스로 축하하는 수 밖에- 라고 생각 하며 9월 1일부로 12월 31일까지의 계약서를 씁니다. 전임자는 정말 싹싹하고 붙임성 있는 남자였는데, 그런 방면으로는 참담하리만치 무능해서-아, 물론 다른 방면으로도 그렇지만- 걱정이 앞섭니다. 실수령액 120정도, 밥사먹고 차비쓰면 한 30정도, 20정도는 약값과 책값등의 용돈, 나머지 70은 생계비로 상납하는 것으로 잠정 결정 되었습니다. 가계에 작은 보탬이 되는 것은 다행이고, 그나마 유일하게 집에 돈 들어올 일이 생긴 것도 다행이고, 게다가 3년동안 아무 일도 못 한채 논 주제에 뭐 가릴 게 없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이래저래 고민이 앞서는 걸 보면서, 난 정말 되먹지 못했구나,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게 뭐가 있는데, 하고 스스로 비웃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 하는 나를 또 한번 비웃지요. 아, 별꼴이야 정말. 아무튼, 당분간 갖은 욕을 먹으며 지낼 듯 하고, 그래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있으니 어쩌면 조금 더 자주 글을 쓸 것 같기도 하고, 물론 지금보다도 더 글을 안쓰는 상태란 불가능 할 것 같기도 하지만, 에, 그렇습니다. 솔직히 무서워요. 이런 비웃음으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내 잘못으로 또 모든 걸 망치는 건 아닐까. 그리고. 나는 과연 앞으로도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그런데 지킨다면 뭘 지켜야 하는 걸까. 이 일은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앞으로 뭘 해야할까. 뭘 할수 있을까. 따위의 소승적 차원에서 이명박은 언제쯤 입을 꿰멜까. 전쟁나면 어떡하지. 등등의 대승적 범위까지. 예, 어떻게 되겠지요. 떠밀려서든 혹은 헤쳐나가든, 원하든 원치 않든, 이렇게 또 흘러 갑니다. 그게 기쁜건지 슬픈건진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잘 모르든 말든, '모든 것은 단지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 위안인지 절망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요.
아, 그리고 혹시, 최근 한 일주일간 홈페이지 접속이 안 되는 상황을 보신 분이 있다면, 관심에 감사드리며, 돈 못내서 호스팅이 잠시 중지되었었습니다-_- 생일선물로 손군에게 일년치 호스팅비를 강탈하였으니 걱정은 마시되, 혹시 후원할 계획이 있다면 79413024....................미안합니다-_-
2010/08/30 22:31 2010/08/30 22:31
어쩌다 이곳을 들러 드문드문 올라오는 나의 안부를 훔쳐보다, 사고소식에 놀랄 나의 오랜 친구들에게-
별일 없이 삽니다. 별 다른 걱정은 많지만. 괜찮습니다.

사고 관련 전화를 두번쯤 받았더니, 반갑긴 한데, 혹시나 해서 올려둡니다-_-;;
2010/08/16 10:59 2010/08/16 10:59